+ [이사야]

하나님 나라의 정중동 (이사 18:1~7) (CBS)

colorprom 2015. 8. 5. 13:49

하나님 나라의 정중동 2015년 8월 5일 수요일

이사야 18:1~18:7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성경 길라잡이 

 

슬프다(1절): ‘슬프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저주나 슬픔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감탄사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감탄사로 볼 수 있다.


구스(1절): 구스는 오늘날 이집트 남부와 수단, 에디오피아를 포함한 고대 에디오피아 지역을 이르는 명칭이다. 이사야가 예언하던 당시는 구스가 이집트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1절):

구스의 상선들이 분주하게 강을 오르내리는 것을 마치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구스는 오늘날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를 말한다.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2절): 2절의 의미를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의역하고 있다.

“그 땅에서 사절단이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나일강으로 내려오는구나. 날쌘 사자들아, 집으로 돌아가거라.

땅이 강으로 나누어진 나라, 막강하여 다른 민족을 짓밟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거라.

키가 크고 탄력 있는 피부를 가진 백성, 온 세상을 두렵게 하던 너희 백성에게 돌아가거라.”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3절):

여기서 표현되고 있는 백성은 앗수르를 뜻한다.

따라서 이는 구스의 사절단들이 앗수르로 파견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구스와 앗수르는 이집트를 치기 위해서 연합전선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 시온 산에 이르리라(7절):

앗수르가 이집트를 공격하는데 이스라엘의 원조를 얻고자 예물을 보내는 것을 뜻한다.

 

묵상과 삶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유다의 히스기야왕은 당시에 세력을 떨치고 있던 구스왕을 의지하였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불신앙의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는 곧 이방민족과의 전쟁의 역사였으나,

그 모든 역사에서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패배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순종할 때 그들이 승리를 얻으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지 못했으므로 세상의 권세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그분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실지 구스와 유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삶에는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불안’은 중요한 쟁점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욕망의 하녀라고 말하며,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 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취업과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겨워하는 오늘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그가 내리는 진단을 되새겨볼 만합니다.

그는 불안을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에 이르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라고 규정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그러한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더 아등바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운무처럼 잠잠하고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중동을 보는 것이 믿음이며, 신앙입니다.

 

삶으로

 

구스는 나일 강 상류에 위치한 나라로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남쪽 땅끝을 상징하는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는 활발한 상업 활동과 외교 등으로 강성한 나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강성한 제국으로 성장해가는 앗수르와 연합하여 이집트를 치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시고 묵인하십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의 흐름들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황들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들에 대해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의 반대편에 서서

엉뚱하게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본문에서도 얼핏 보면 구스와 앗수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연합은 합당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묵인하십니다.

이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구스와 앗수르의 연합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이사야의 경고를 무시한 채 상황 판단을 잘못 하고 이집트를 지원함으로써

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묵상질문

 

위기 상황 속에서 나와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고 따릅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구스와 앗수르의 연합을 묵인하셨을까요?

나는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나요?

 

기도

 

하나님의 장엄한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며 묵묵히 말씀을 따라 살아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로 이 상황을 바르게 판단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