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015년 6월 30일 화요일
마태복음 28:11~28:20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11절):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제자들에게뿐 아니라 경비병을 통해 유대 지도자들에게도 전달된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또다시 거짓 증거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소식이 두루 퍼진다.
권하여(14절): 단순히 권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러 말로 설득하고 타이르는 것을 뜻한다.
도둑질하여 갔다(14절):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시체를 훔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대제사장들이 꾸민 이야기더 쉽게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17절):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접한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대로 갈릴리의 어떤 산에서 예수님을 뵙고 경배한다.
흥미롭게도 그들 가운데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18절): 예수님의 권세의 범위는 온 우주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0절):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전에 그의 부모들에게 천사들이 전해준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시고,
또한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다.
1장 23절에 언급되었던 ‘임마누엘’의 약속이 다시 한 번 주어지고 있다.
이것이 교회가 이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015년 6월 30일 화요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부활의 권능으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제자들은 그렇게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믿음으로 감당함으로써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시작하신 일이,
그분의 명령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서 지속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제자들에게도 고난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그 고난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더라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그들 역시 부활의 소망을 품고 그 사명을 끝까지 이루어갈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심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며,
죄와 사망의 질서를 벗어나 생명의 법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 가운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주님께서 ‘분부하신 것’을 이행하는 제자가 되는 일조차 버거워합니다.
우리 삶에 필요를 채워주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명령은 우리를 그분의 은혜 가운데로 초대하는 약속이며,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아갈 때 진리가 만들어내는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령 의심 가운데 있더라도, 분부하신 것을 따르며 그것을 가르쳐 지키게 한다면,
분명히 그 순간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권능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여인들과 달리,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거짓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속하게 거짓증언을 꾸며 이 사실을 숨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엄연한 사실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한 증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온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과 함께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곧 우주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로 부름받은 자라면 누구나 따라야할 사명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따라야할 우주적인 명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오늘날 이 복음이 의미하는 바를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 복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설령 그로 인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실 지금 당하는 손해는 나중의 부활의 영광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지금 예수님께서 함께하심에서 오는 이익에도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날아가는 아들 2016년 5월 5일 목요일
그는 대학에 들어가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름을 받아 선교의 뜻을 품고 결혼하여 곧 브라질로 갔습니다. 1년 간 언어를 익혀 번역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안정된 직장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는 대학캠퍼스에서 전도합니다. 낮에는 자녀들을 유아시설에 맡기고 아내가 나가 전도합니다. 저녁에는 남편이 나가 전도합니다.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아들, 그 자랑스럽기만 하던 장남이 먼 나라로 떠나갔을 때 그의 아버지는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습니다. 착하고 똑똑한 아들과 이별하고 그의 어머니는 암을 앓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하루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금씩 깨달아갑니다. 12년 만에 고향집에 돌아온 아들, 아버지 어머니 계신 이 고향집이 아무리 좋아도 곧 다시 날아갔습니다. 모두가 가야할 그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너희는 가라"는 것이었습니다.(마28:19)
우리 믿음의 사람은, 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본토친척 아비 집을 등지고 가야 하고, 배와 그물을 버리고 떠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떠날 때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십자가와 부활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지구, 아니 우주를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마태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십니다.(마28:19) 나 혼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부터 십자가의 주님을 믿고 부활의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로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즉 우리는 다른 것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도 말로만 떠들지 말고 '삶을 통하여' 전파해야 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떠올리며 감동받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민족'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을 마치 이익집단인 양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아닙니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는 지금 십자가와 부활 앞에서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있는 제자로서의 자격과 능력은, 회개할 때에 성령께서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조상을 처음 부르실 때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으며,(창12:1)
없겠지요. 그 정도로 절대적 가치를 가진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모든 민족, 즉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려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2018년 5월 23일 수요일)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갈릴리의 의미, 그리고 마지막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를 '이방의 갈릴리'로 여겨 꺼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의 대부분을 갈릴리에서 보내셨지요.
그런 데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금 갈릴리로 제자들을 불러모으십니다.
본격적인 복음전파를 시작하시려는 의지를 표명하십니다.
즉 갈릴리는 복음전파의 '시작지점'을 의미합니다.
한편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라.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본문에는 네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가라, 제자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러면 갈릴리에 모인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아 그 즉시 복음을 전파했을까요?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성령을 받은 다음에야 예수님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전파의 기초가 되는 곳에 모여있더라도,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복음전파를 곧바로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함께하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이 답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극도로 섬세합니다.
사실 마태복음이 기록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전파하라'가 아닙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입니다.(마28:20)
+ 주님, 우리가 갈릴리로 가겠습니다. 성령이여, 우리와 함께하소서. 아멘.
Never Ending Story (2019년 5월 30일 목요일)
'The end'는 영화가 끝날 때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해서 절정을 지나 결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이 문구를 대하면, 아쉬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느껴지곤 합니다.
진짜 끝난 건가싶고, 이 끝이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여운도 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유사한 여운이 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이 땅에서의 삶과 사역에 '엔딩(ending)'을 고하시며,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시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마지막 당부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권면입니다.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사라지고
이제 남은 열한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적어도 그들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부활사건을 의심하는 자들도 아직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철저한 좌절, 실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아있는 열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명령하시며,
아직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나라를 끝까지 확장해나갈 ‘제자로 존재해야 함’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그리고 여전히 의심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분의 구원사역과 생명사역은 지속되고 있습니다(Never Ending Story).
우리모두가 그 일의 증인입니다.
+ 주여, 우리를 당신의 사역을 이어갈 도구로 사용하여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 부활의 소식은 두 가지 경로로 전달되는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 20절을 볼 때 ‘제자를 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입니까?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 나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복음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실천하고 있나요?
기도
+ 의심 가운데서도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길에 들어서게 해주십시오.
+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자로서 바라보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해주십시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을 지켜주소서.
선교사님을 보낸 식구들을 또한 보살펴주소서.
우리 모두 기도로 선교에 동참하게 해주소서. 아멘.
예수님의 제자로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진정한 제자 되게 하소서. 아멘.
'+ [마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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