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사랑과 축복 2015년 6월 13일 토요일
고린도후서 13:1~13:13 / 222장 (통 524장)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가 너희에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우리가 버림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내용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준엄히 꾸짖습니다.
꾸짖음이 필요할 때는 꾸짖어야 합니다. 꾸짖어야 할 때 ‘오냐오냐’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책임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목자가 양을 사랑한다면 그 양에 대하여 무한히 책임을 집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을 그냥 덮어두지 않았습니다. 책망하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후 12: 19)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장차 방문하게 될 것이라 예고하면서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는 강경한 표현을 사용합니다.(2절)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벌주겠다, 응징하겠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겠다는 말입니다.
뒤늦게라도 잘못을 고치고 온전하게 되라는 권면입니다.(9절)
바울은 결론적으로, 교회공동체를 축복합니다.
먼저 교인들에게 기뻐하고, 온전하며, 위로를 받고,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를 축복하라고 말합니 다.(11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3절)
쓴소리를 하는 것은 내 분노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렇게 합니까?
기도
주님,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마음을 주소서.
사랑과 축복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세워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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