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

언제까지나 기다리시지는 않으십니다 (마태 23:29~39) (CBS)

colorprom 2015. 6. 4. 14:27

언제까지나 기다리시지는 않으십니다 2015년 6월 4일 목요일

마태복음 23:29~23:3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31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구약에서 박해를 받아 죽은 선지자들의 무덤과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고

자신들이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그들도 실상은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을 박해하고 있다.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 분량을 채우라(31-32절):

과거 유대사회에서도 부와 권력을 누리던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좋은 말을 하지 않는 선지자들을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와 같은 조상들의 죄악을 그들이 반복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여기서 분량을 채우는 것은 마지막으로 잔을 채우는 것을 말하고,

이는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일이었다.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35절):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는 포로후기 시대의 스가랴(슥 1장 1절)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질책하다가 성전 뜰 안에서 돌에 맞아 순교당한 스가랴(대하 24장 20~22절)이다.

유대인들의 성경분류법에 따르면

아벨은 첫 책인 창세기의 순교자이며,

스가랴는 마지막 책인 역대하의 순교자이다.

그러므로 아벨과 스가랴는 구약 시대 모든 순교자들의 의로운 피를 포괄하는 표현이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38절): 집은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떠나셨기에 하나님의 집이 아닌 ‘너희의 집’으로 불려진다.

 

묵상과 삶

 

모든 범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합니다.

에덴에서 하와를 유혹했던 뱀은 하나님을 속 좁은 분으로 왜곡했고,

첫 살인자 가인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분으로 왜곡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함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닌 우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의를 배제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분칠해,

그 어떤 것이라도 다 용납하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하나님을 왜곡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배제한 정의로 하나님을 분칠해서 잔혹한 살인자로 하나님을 왜곡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께서는 가공되지 않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인내는 수천 년에 이르지만, 그 인내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처음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도 느끼고 돌이키고자 하는 열정도 큽니다.

그러나 죄가 반복되면 양심의 가책도 둔해지고, 돌이키고자 하는 열정도 약해집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죄를 짓는 것이 점점 더 대담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에 무지하기에 벌어지는 잘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과 관련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3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기에 우리의 모든 잘못을 일일이 즉각적으로 심판하지는 않으십니다.

둘째,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넘는 순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셋째, 죄를 반복적으로 지음으로써 그 상태로 방치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속히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사전적으로 ‘외식’이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는 내부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부만 그럴듯하게 꾸며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결국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외식에는 이보다 더 나쁜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경건을 가장하여 직분적, 경제적, 사역적 이득을 노리는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 안의 다른 성도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마저 속이려는 행동이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이 땅의 세속적인 헛된 것과 바꾸려는 참으로 어리석은 탐욕입니다.


이와 같은 외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들의 외식을 지적하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는 비단 유대의 역사나 예수님 시대에서만이 아니라 2000년이 넘는 교회의 역사,

나아가 모든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외식하는 자는 아닌지,

자신의 외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이들의 외식에 대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외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를 수 없습니다.

 

묵상질문

 

- 마음이 무뎌져서 방치하고 있는 범죄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 그 범죄를 저지르는 나를 볼 때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 또한 반드시 보아야 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살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외식하지 않고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 반복적인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 지체의 범죄를 외면하지 않고 바른 길로 인도하게 해주십시오.

+ 오랜 신앙생활로 겉모습만 교회와 말씀에 익숙해져가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까지 더욱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그것을 즐거워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