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다른 이름은 눈먼 열정입니다 2015년 6월 2일 화요일
마태복음 23:13~23:22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화 있을진저(13절):
7 번 등장하는 ‘화 있을진저’는 마태복음 5장의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의 반대 의미로서,
심판이 예상되는 위험한 상태를 의미한다.
양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과 진노하시는 삶을 비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책망하는 것에 머무시지 않고,
만일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화(진노)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13,15절):
당시 서기관은 교육과 법관의 직책을 겸한 직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서기관들이 모세의 권위를 대행하는 자리만 차지한 채 원래의 역할은 소홀히 했던 것이다.
‘외식’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이다.
율법의 외양은 가지고 있었지만, 율법이 추구하는 본질은 상실했다.
그 결과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열정은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눈 먼 인도자여(16절):
외식의 다른 표현이 ‘눈먼’ 또는 ‘맹인’(17, 19절)이다.
사소한 율법 조항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율법 조항을 무시하였다.
16, 17절의 성전과 성전의 금, 18, 19절의 제단과 제단의 제물의 관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을 간과하였다.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맹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16절):
18절의 말씀을 보아 여기서 성전의 금은 백성들이 바치는 헌금을 의미한다.
그들은 헌금의 액수에 따라 맹세나 헌신의 중요성을 따졌던 것이다.
이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어기는 것이었다.
묵상과 삶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큰 열정을 가지라고 권면하며 세차게 몰아붙입니다.
하지만 열정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눈먼 열정들이 쌓이고 쌓여 세상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열정은 칭찬받을 만했습니다.
열정적으로 율법을 가르쳤고,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녔습니다.
그러나 탐욕에 기초한 열정의 결과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외양이 아닌 율법의 정신을,
성전의 금이 아닌 성전을, 제단의 제물이 아닌 제단을 통해 더욱 중요한 것을 밝히셨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우리의 눈을 가리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십니다.
‘사랑’을 참으로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한 남편이 자신의 아내에게 열정을 쏟는 것은 참 사랑이지만,
다른 여인에게 지극한 열정을 쏟는 것은 사랑이라는 탈을 쓴 욕망일 뿐입니다.
그러나 욕망에 눈 먼 이 세대는 그저 그러한 열정 자체를 사랑합니다.
마찬가지로 열정 그 자체를 추구할 때,
그 열정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며 사람을 학대하는 폭력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열정 페이’라는 모순적 신조어가 있듯이, 열정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열정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을 드러내시는 예수님과 더불어, 또한 그 예수님 덕분에 만난 지체들과의 밝은 사귐 속에서
우리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홀로 열 걸음을 내딛는 것보다 더불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밝은 열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지도자들에게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그들의 외식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들의 외식은 사람들이 ‘천국의 문’으로 가는 것을 막습니다.
둘째로 그들의 외식은 사람들을 ‘지옥의 자식’이 되도록 이끕니다.
셋째로 그들의 외식은 사람들을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렇듯 당시 지도자들은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남들에게서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가 지나치다보면, 원래의 순수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만족시키려고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자신이 마음에(또는 공동체의 내부에)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거나 적당히 덮어 두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또는 공동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겉’보다 중요한 것이 ‘속’입니다.
겉이 추한 음식은 그래도 먹을 수 있지만, 속이 썩은 음식은 절대 먹을 수 없습니다.
묵상질문
- 현재 자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열정의 근원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습니까?
-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닌 보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심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나는 겉보다 속을 중요시하나요? 속을 성장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나요?
기도
+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해주십시오.
+ 서로를 밝게 비추어주는 눈 밝은 이들의 공동체로 살게 해주십시오.
+ 예수님 안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겉모습보다는 속마음을 더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 [마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까지나 기다리시지는 않으십니다 (마태 23:29~39) (CBS) (0) | 2015.06.04 |
---|---|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마태 23:23~28) (CBS) (0) | 2015.06.03 |
[74]상승지향인 종교와 하강지향인 신앙 (마태 23:1~12) (CBS) (0) | 2015.06.01 |
[73]자기중심적 사랑의 방식을 넘어 (마태 22:34~46) (CBS) (0) | 2015.05.30 |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마태 22:23~33) (CBS) (0) | 2015.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