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사랑의 방식을 넘어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마태복음 22:34~22:46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성경 길라잡이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6절):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계명들을 크고 작은 법들로 구별했다.
대표적인 것이 탈무드에 나오는 랍비 아키바의 이야기인데,
그는 한쪽 다리로 서 있을 동안에 율법 전체를 설명하라는 이방인의 도전에
부정적 황금률(“너에게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이 율법의 전체이며
나머지들은 그것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편 랍비들은 율법을 세밀하게 나누어서 율법 중에 613(십계명 글자의 수) 계명이 있다고 보고
그 중 248개(사람 몸의 지체 수)는 적극적인 금지 계명,
365개(일년의 날 수)는 소극적인 금지 계명으로 분류하였다.
랍비들은 이렇게 율법을 연구함으로써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율법의 목표요 정점인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영접하지 않았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37절):
마음, 목숨, 뜻은 인간을 형성하는 세부분을 구체적으로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첫째되는 계명이요(38절):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랑이 모든 율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묵상과 삶
율법학자들은 구약의 율법을 613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어느 율법이 가장 중요한지가 항상 논쟁거리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번에도 이러한 논쟁을 걸어 예수님을 위험에 빠뜨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시험하는 자들의 질문을 통해 큰 가르침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인격 전체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부분적으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조금도 빠짐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자기중심적인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상대방을 중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오늘날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사랑하는 방식마저도 ‘너’중심이 아닌 ‘나’중심의 사랑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사랑받기를 바라기만 하는 상태를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랑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가 바라는 대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폭력이 되기 마련입니다.
이웃 사랑의 계명을 받은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들도 늘 새로운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되, 그 방식은 철저히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도 누군가를 대할 때 늘 역지사지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 중 한 율법사가 나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입니까?”
그들은 곧 바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됩니까?”
바리새인들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잘 몰랐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정통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만 알고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한 것은 몰랐을까요?
이는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곧 2개가 충돌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만을 알기로 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도 바리새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에게 편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적용했기에
예수님께 그토록 호되게 꾸지람을 받았던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떠한가요?
하나님과 성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만 알려고 하지는 않나요?
나아가 그렇게 알게 된 대로 살아가려고 하지는 않나요?
묵상질문
-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할 때 나 중심적으로 사랑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 우리 공동체와 교회는 새로 온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을까요?
- 하나님과 성경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 우리를 이해하셔서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인간이 되기까지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 중심의 방식을 극복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배려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 바리새인들과 같이 하나님과 성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만 알려고 하지 않게 하시고,
온전히 하나님과 성경을 알아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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