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마태복음 9:9~9:17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래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마태(9절): 다른 복음서에서는 레위라고 부르고 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게바(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듯이, 레위에게 마태라는 이름을 주셨을 것이다.
세리(10절): 세리는 유대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일정부분은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착복하였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로부터 매국노로 취급당하였고, 율법적으로 죄인으로 취급되었다.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13절):
이 말씀은 호세아서를 인용한 것으로,
내적인 경건이 없이 행하는 형식적인 종교행위를 경고하시는 말씀이다(호 6장 6절).
죄인들(10절):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관점에서
정결법이나 음식법등 전통적 율법 해석을 준수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세리인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른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히려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원하시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호세아서의 말씀을 인용하시고,
그 뜻이 무엇인지 똑바로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게 될 때 우리 신앙은 그저 종교 중 하나가 되고 맙니다.
외형적이고 의례적인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바로 제사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사회의 정의와 윤리적인 행위를 추구할 때 비로소 제사다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본질을 잃은 신앙은 한낱 종교일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도의 교제’라는 미명 아래 사회에서도 기독교인들과만 사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는 가치관도, 생활 방식이나 삶의 패턴도 달라 사귀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들과 함께 지내다 신앙을 타협하게 되지 않기 위해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교회 밖의 이웃들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고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은 그들과 구분됨으로써 이행됩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며,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사회에서 정의가 구현되기를 추구하는 것으로써,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17년 1월 18일 수요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금식하는 행위'에,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엔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라고 물으시면서
너희들이 금식하며 기다리는 메시야가 혼인집 신랑으로 벌써왔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지금 함께 있으니 혼인집을 찾은 손님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을 내려놓고, 의미없는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신랑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신랑 되신 예수님을 빼앗길 때가 올 텐데 그때는 금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새것이 낡은 옷을 당겨서 더 해어지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으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도 버리고, 가죽부대도 버리게 된다는 비유도 덧붙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옛 성품을 버리고, 의미없는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도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이제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복음 안에서 기뻐하며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세리 마태를 부르심 (2018년 2월 17일 토요일)
가버나움의 세관에 앉아있던 세리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태복음 본문에서는 그가 "일어나 따르니라"라고 기록했고,
누가복음 본문에서는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쫓으니라"라고 보도했습니다.(눅5:28)
예수님의 말씀은 자세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마디입니다. "나를 따르라."
그런데 마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랐습니다.
'세리'라는 회계관련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는 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알아보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 그의 마음과 영혼이 공허하였음도 예수님은 알아보셨을 것입니다.
사실 마음과 영혼이 공허한 사람들은 곳곳에 있습니다.
마태가 있던 그 자리에 있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그랬겠지요.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공허함을 감추려고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며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9:12) 또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이 말씀에 어떤 사람들은 '병든 자, 죄인인 나를 부르러 오셨구나'하고 생각했겠지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을 빼고 대개의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2020년 1월 22일 수요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 말의 유래와 정확한 뜻을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왜 금식하지 않는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일에 오히려 죄인으로 불려지는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지금은 혼인기간이기에 금식할 때가 아님을 말씀하시며,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의 비유를 들어 답변하십니다.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세우신 새 질서, 새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새 옷감을 헌 옷감에 함께 기워놓으면,
물로 세탁할 때 새 옷감이 줄어들면서 헌 옷감을 잡아당겨 옷 전체를 망가뜨립니다.
또한 새 포도주는 가죽 부대에 넣었을 때 그 안에서 발효가 되어 팽창하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신축성이 있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듣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새 가르침을 담아낼 수 있는 새 부대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새 가르침을 담아낼 수 있는 새 부대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낡은 부대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예수님의 새 가르침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보다 앞선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많은 이 세상에서,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게 하여 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 나의 삶에서 어울리기가 꺼려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
+ 죄인인 우리와 함께 계셔주시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 옛 성품과 의미없는 행위를 버리고 주님 안에서 새 피조물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주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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