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넘어서는 진실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여호수아 22:10~22:20
10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1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의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
15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되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17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18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19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10절):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요단강의 서편 강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
그 단이 매우 컸기에 요단 동쪽과 서쪽에서 모두 보였다.
구약시대에 단을 쌓는 이유는
하나님이나 우상에게 제사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어떤 사건이나 계약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 두 지파 반이 요단강 경계에 큰 단을 쌓은 것은 후자의 이유였지만,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들은 전자의 경우로 오해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12절):
신명기 12장 4절부터 14절까지는 중앙 성소만을 예배의 자리로 인정한다.
이런 점에서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동편의 지파들이 제단을 쌓은 일을 중앙 성소를 부정하는 행위로 이해했다.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13절):
민수기 25장 1절부터 9절까지에 기록된 비느하스의 행동을 고려할 때,
비느하스는 대표단의 수장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17절): 여기서 ‘브올의 죄악’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 머물 당시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모압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던 것을 가리킨다.
그 일로 인해 24,000명이 염병으로 죽고 말았다(민 25:1-9).
이는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에 대한 교훈으로 크게 기억에 남은 사건이었다.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19절):
요단 서편의 대표들은 브올과 아간의 사례를 통해 소수의 잘못이 온 회중에 미칠 영향을 경고했다.
심지어 그들이 받은 기업의 일부를 양보해서라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다.
불편을 넘어서는 진실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요즘 세상에서는 편리와 효율성이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부담감 때문에 정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마음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차마 부담감을 감수할 만한 신뢰와 기반이 없기에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상입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서로를 지켜주는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동편의 지파들이 요단에 제단을 쌓은 것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이때 자칫 지체들과 전쟁을 벌이게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를 묵인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용기를 내어 진실을 직면하기로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편리를 따라 행하셨다면,
결코 우리의 숨은 죄를 드러내지도, 그 결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편
리함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관계는 서로를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가벼운 만남’입니다.
남녀가 가볍게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서로 책임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저 즐거운 유희일 뿐입니다.
또한 헤어져도 구질구질하게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계가 주는 즐거움을 얻으려 하나, 지불해야 할 대가는 외면합니다.
그 결과 가벼운 만남 속에서 자신도 가벼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과 복음이 일으킨 관계는 무겁습니다.
무겁기에 그 어떤 부담감도 넘어설 만한 힘이 그 안에 있습니다.
잠시의 부담감을 피하려고 해야 할 말을 삼킨다면, 그 지체와의 관계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용기를 내어 할까 말까 고민했던 말을 무엇보다 겸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체를 살리는 용기 있는 사랑입니다.
오해로 시작되는 불신의 늪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가나안 정복전쟁이 모두 마무리되고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으로 돌아갔을 때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곧 두 지파 반이 요단강 가에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요단 동편 지파의 잘못을 책망하기 위해 비느하스를 앞세워 10지파의 대표들을 파견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형제들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고 헌신했던 요단 동편 지파들이 왜 새로운 제단을 쌓았는지
자세히 살피지 않고 그 순간 사건의 일면만을 놓고 분노했던 것입니다.
물론 다행히 이 일은 큰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었지만
일촉즉발의 위험이 감도는 오해와 불신이 도사리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믿음의 형제간에도 쉽게 오해와 불신의 늪에 빠져 서로를 적대하는 모습들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표자들을 보내 사정과 이유를 알아보게 함으로써
더 큰 갈등과 전쟁을 막았던 것처럼, 차분히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음으로써
사건의 전체를 살필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겠습니다.
서로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묵상질문
- 부담감 때문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지체가 있습니까? 어떤 부담감이 정직한 소통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 하나님과의 관계와 지체와의 관계에서 반드시 드러나야 할 진실이 무엇입니까?
1 요단 서편의 사람들이 요단 동편의 사람들이 행한 일에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5 나는 믿음의 형제들을 신뢰하고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나요?
기도
+ 부담감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 꼭 만나야 할 지체를 만나서 해야 할 말을 하는 용기가 있게 해주십시오.
갈수록 서로간의 불신과 오해로 높게만 쌓여가는 이 사회의 벽들이 허물어질 수 있도록 하시고,
그 일을 위해 수고하는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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