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4]우리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 (엡 2:11~22) (CBS)

colorprom 2014. 12. 11. 13:51

우리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에베소서 2:11~2:22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그 때에 육체로는(11절):

그 때와(11,12절): 이제(13절):가 대조가 된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방인이고 무할례자이다. 메시야를 모르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서 약속과 하나님의 은혜와 새창조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14절): 우리는 보통 화평이라고 하면 ‘마음이 평안한’ 상태로 이해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화평이란 걱정이나 탈이 없는 내적인 평안이 아니라,

불화나 적대 관계가 해소됨으로써 이루어지는 화합과 교제와 일치의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하시고 평화를 이루시는 분이다.

심지어 원수조차도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다.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5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을 헐어버리셨다.

둘의 장벽이었던 율법을 성취하심에는 폐하심도 포함된다.

외적인 성전이 파괴됨으로 외적 장벽들인 율법 조항들은 폐지되고 성취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은혜안에서 주어지는 평화와 평안을 전하였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20절):

이방인들은 율법 없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인해서 죽은 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사죄함의 복음의 은혜로 둘 다 살아났다.

이제 그들의 삶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해준 복음이다.

그래서 교회로 함께 지어져 간다.

 

우리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과거에는 이방인이고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성취는 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성전에서 피 흘리는 동물의 제사와 같은 것은 폐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없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됨 그 자체이었는데, 이것을 성취적 폐하심으로 인해서 외적인 구별을 없앤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성도들이고 하나님 나라의 식구가 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한 모든 곳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이나 모임이 대부분 있던 지역입니다.

교회가 세워졌을 때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됩니다.

그때 양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한 공동체로 세워지는 것은 초대 교회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삶의 방식들이 있지만

그 다른 것들 중심에 있는 본질은 죄와 육체의 욕심에 굴복하는 삶임을 간파하고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란 공통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의 복음은 모든 장벽을 헐어버리고 새로운 하나됨을 만들어 내었다고 설명합니다.


남과 북이 벌써 70년 헤어져 있으면서 전혀 다른 세상들이 되었습니다.

이념의 차이와 통치의 차이가 삶의 차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남북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힘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진정으로 남북의 막힌 담을 허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먼저 탈북자들을 섬기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우리 삶에 막힌 모든 것들을 무너뜨린 주님이심을 기억하고 선한 것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화해하세요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가장 행복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오고 타락하면서 인간들은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행복(에덴동산)을 잃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과 다른 피조세계와의 관계마저 파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에베소 교회에서도 벌어졌습니다.

곧 유대인 출신 성도들과 이방인 출신 성도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곧 십자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줍니다.

그것은 곧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 막힌 담을 허무시고,

새로운 한 사람을 지어(14절)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 다른 피조세계와의 관계에서 화평을 누리고 있나요?

나의 가족과 교회는 참된 화평을 누리고 있나요?

혹시라도 관계가 깨어져 있는 부분이 있다면 속히 회복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관계들을 화평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우리 개인의 영역을 넘어 가정과 학교, 교회, 그 외 모든 생활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화해를 이루는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설령 이를 위해 내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양날개는 건강합니까? 2016년 7월 26일 화요일 (엡 2:19~22)


오늘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하는 초대교회

'예배' '영적 친교'라는 '양날개'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날개가 똑같은 수준으로 건강한 새는 잘 날아갈 수 있지요.

예배와 영적 친교라는 양날개를 가지고서 초대교회 는 이를테면 '잘 날았습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떠합니까?


한국교회는 모이기만 하면 예배드립니다.

작든 크든 모임이 열렸다 하면 마치 '개회사'처럼 예배가 거행됩니다.

표면으로만 보면 '예배' 쪽 날개가 괜찮아 보입니다.

그러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있는가(요4:23) 질문해볼 때 대답이 석연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 다른쪽 날개를 봅니다.

한국교회 안에 차별없는 친교, 영적 친교가 활발합니까?

 

제도적 예배중심의 중세가톨릭을 개혁하고 나선 종교개혁가 존웨슬리

무엇보다 '속회'중심의 영적 친교를 강조한 바 있었지요.

종교개혁 이후, 한국교회에서 속회(구역, 셀 등)는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혹시 그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우리 교회의 양날개가 지금 얼마나 건강한지 점검하려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권면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리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느니라."

(엡2:20-22)


+ 교회의 양날개인 예배와 영적 친교가 건강하게 이루어져,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로 다시금 힘차게 날아오르게 하소서. 아멘.


담을 허물어 평안을 2017년 6월 28일 수요일 (엡 2:11~18)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에 대하여 ‘이전의 사람’과 '이제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하나님 밖의 사람이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전에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이제는 가깝습니다.

이전에는 원수들이었으나 이제는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덕분입니다.(엡2:12-13)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몸을 깨뜨려 피를 흘리셔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갈라졌던 것이지요.


성소의 휘장은 휘장 이쪽과 휘장 저쪽을 갈라놓는 벽이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담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담을 무너뜨리셨습니다.(히10:20)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무너뜨려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안입니다.

이제 둘이 하나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벽들이 존재합니다.

인종의 벽, 경제의 벽, 군대의 벽, 편견의 벽 등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서로 투쟁하게 만듭니다.

벽 혹은 담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일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벽을 허뭅시다. 담을 허뭅시다. 평안을 이룹시다.


하나님의 권속이라 (2019년 7월 30일 화요일)


이스라엘의 성전은 여러 개의 뜰로 구분되어있어서 신분이나 성별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달랐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뜰에는 출입할 수 없었고, 여성들은 여인의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소에는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시고, 그러한 장벽을 허물어버리셨습니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물고 둘로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모든 사람이 이제는 외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동일한 하나님나라의 권속이요, 시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의 사람들을 차별할 목적으로 구분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집단학살의 시발점은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짓는 데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나와 네가 다를 수는 있어도 나와 네가 하나님의 동일한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즈음 어느 지역을 가든지 외국인들과 탈북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결혼을 하기 위해, 또는 위험한 자기 나라에서 생존할 수 없어서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모두 이 땅에 함께 살도록 보내신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 만나는 이방인들을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씀과(15절): 성취하셨다는 말씀(마5:17절):은 어떻게 조화가 됩니까?

- 이방인들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나요?

5 나는 지금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고 있나요? 특히 지금 내가 화해해야 할 사람이 있나요?


기도

 

+ 모든 막힌 담을 헐어버리시고 평화로 하나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 내 삶에서도 모든 막힌 것을 헐어내신 것을 믿고 선한 것을 실천하면서 하나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죄로 인해 깨어진 모든 관계(하나님, 사람들, 그리고 모든 피조세계와의 관계)가 회복되게 하시고,

그 일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주님, 벽을 허물고 담을 허물어 주 안에서 화평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