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회복을 향한 꿈 2014년 3월 20일 목요일
창 37:1~37:11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3절):
야곱이 요셉을 위해 만든 ‘채색옷’의 원어적 의미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소매 외투’이다.
이는 당시에 보편적이었던 ‘무릎 길이의 짧은 소매 옷’과는 다른 용도의 옷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옷은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대의 일반적인 복장이 노동에 적합한 것이었다면, 요셉이 입은 옷은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감독’의 옷이다. 즉 야곱은 요셉으로 하여금 다른 형제들을 감독하게 한 것이다.
앞선 르우벤의 행동(35장 22절)을 고려하면, 형제들 사이에 큰 긴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5절):
요셉이 꾼 두 가지 꿈은 모두 그의 가족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야곱의 편애를 원인으로 하는 형제들 사이의 긴장을 고려하면, 요셉이 꾸었던 꿈은
그가 강대국의 총리가 되는 것보다는, 분열된 가족이 그를 통하여 다시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회복을 향한 꿈 2014년 3월 20일 목요일
아버지의 자리를 탐하는 르우벤의 도전, 하나님의 약속 대신 소유를 선택한 에서의 문제는
곧 야곱 가정의 내적 문제였습니다.
야곱의 편애 때문에 형제들 사이에서 긴장이 높아지는 정황에서,
야곱은 요셉을 공식적인 감독으로 세웠습니다.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골육상쟁을 고려할 때, 요셉이 꾼 꿈은 가정 공동체가 회복되는 비전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야망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외관상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야망은 보아야 할 현실이 아닌, 보고 싶은 몽상에서 출발합니다.
즉 스스로 만든 꿈이 야망입니다.
그 야망을 추구하는 과정은 양립할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을 수반합니다.
그러니 야망의 마지막은 외롭습니다.
혹 이루고 싶은 야망을 성취하더라도, 그 누구와 그 성취를 공유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정직하게 보아야 할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에 비전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것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부족과 결핍에 대한 것입니다.
자연히 비전을 이뤄가는 과정은 경쟁이 아닌 더불어 이루는 협력을 수반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비전의 결과는 공동체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여정이었으니, 자연히 사람들과 더불어 그 결과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망이 넘실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야망은 다른 사람의 야망과 양립할 수 없으며, 결국 세상을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비전을 함께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필요한 것은 야망이 아닌 비전입니다.
+ 세상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 공동체의 결핍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꿈을 꾸게 하소서 (2017년 8월 26일 토요일) (창 37:5~11)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질주할 것이고,
그 경우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성공확률이 매우 높다는 상식 때문이죠.
그럴 때 사례로 드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꿈 이야기를 발설하면서부터 요셉은 고난을 겪기 시작합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는 그의 꿈 이야기는 형들이 듣기에 매우 불쾌한 내용이었습니다.
부모(해와 달)와 형제들(별 열한 개)이 요셉에게 절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불쾌했던 것이지요.
흔히 위계질서는 나이를 따르곤 하니까요.
그러나, 결국 요셉의 꿈은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꿈이, 그의 욕심이나 부모의 소망에 기반한 장래희망 같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계시하여주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는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에게 그냥 꿈을 꾸라고 무책임하게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꿈의 내용이 사회적 성공에 결부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여주시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아니, 젊은이들뿐 아니라 늙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여주시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그 꿈을 꿈으로써 고난이 시작될지라도 말입니다.
+ 하나님이여, 요셉이 꿈을 꾼 것처럼 우리도 꿈을 꾸어 미래의 비전을 갖게 하소서. 아멘.
요셉의 ‘긴 소매 옷’이 형제들 사이에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까요?
요셉이 꾸었던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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