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가 사람의 꾀를 이깁니다 2014년 3월 21일 금요일
창 37:12~37:24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13절): 야곱이 거주하고 있는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80킬로미터가 조금 넘게 떨어져 있으니, 4일 정도 걸리는 여정이다. 앞서 야곱은 요셉에게 ‘긴 소매 옷’을 주어 감독관으로 삼았다. 본문에서 요셉은 감독관으로서의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15절): 세겜에서 형제들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요셉이 도단까지 이른 결정적 계기는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다. 외관상 우연한 만남이지만, 이후 사건의 전개를 볼 때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23절): 형제들이 요셉에게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요셉의 옷을 벗긴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옷을 벗긴 것이 아니라, 야곱이 요셉에게 부여한 지위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야곱의 가정에 내재해 있던 긴장이 무서운 살의로 드러났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감독관으로 자신들을 찾아온 요셉뿐 아니라, 요셉을 감독관으로 세운 야곱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발했습니다. 외관상 형제들의 ‘꾀’(18절)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통해 형제들의 ‘꾀’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가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의 권리를 약탈하며 죽이기를 도모하는 사람의 ‘꾀’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꾀는 더 이상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탁월한 재능입니다. 한 사람을 속이면 거짓말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면 능력이라고 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더불어 모의하는 꾀는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꾀가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에 만연해있습니다. 그렇기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다 믿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바야흐로 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꾀보다 큽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꾀조차도 자신의 섭리를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하십니다. 비록 순간적으로는 사람의 꾀가 이긴 것 같지만, 사람의 꾀는 결코 하나님의 섭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꾀를 사용하지 맙시다. 이웃은 우리가 속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할 대상입니다. 이웃을 해하는 자는 결국 자신을 해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정직합시다.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섭리입니다.
형제들의 ‘꾀’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사건의 전개에서 ‘어떤 사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꾀를 잘 분별하여 꾀에 동참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하나님과 이웃 앞에 정직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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