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은혜를 구하는 야곱 2014년 3월 12일 수요일
창 33:1~33:20
1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성경 길라잡이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3절):
고대 근동에서 일곱 번 절하며 나아가는 것은
봉신이 자신의 주군을 영접할 때 보이는 행위다(WBC주석 인용).
야곱은 형 에서를 자신보다 큰 자로 인정한다는 마음을 이와 같이 표현했다.
이는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겼을 때 품었던 분노를 풀기에 합당한 행동이었다.
거기서 제단을 쌓고(20절):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한 야곱은 세겜에 정착하여 평화를 누리게 된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고향으로 돌아와 평화를 누리게 하신 것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엎드려 은혜를 구하는 야곱 2014년 3월 12일 수요일
야곱은 약속의 땅에 돌아와 에서와 화해한 후 세겜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한껏 고무되어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허벅지 뼈를 꺾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제사의 형식이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엎드려 구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로 자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드러내기를 원하는 자들은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자기 능력과 힘을 과신하여 자랑하며 떠드는 자들 주위에는 적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때문에 다툼이 끊이지 않아 늘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삶은 다른 사람을 쓰러뜨림으로써 원하는 것을 성취해간다는 신념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그런 승리 안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며 다른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는 친구가 생깁니다.
다툼이 적어지고, 더불어 동행할 수 있는 신뢰가 자랍니다.
사람들 사이에 지속되던 갈등이 해결되고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선한 일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사람은 평화를 이루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참 겸손의 능력을 압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된 겸손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참된 겸손을 배워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평화의 사도들이며,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할 사역자들입니다.
화해와 평화 (2017년 8월 8일 화요일) (창 33:1~12)
불화하고 갈등하는 것은 가히 인간 본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독교 사회와 이슬람사회와의 분쟁은 끊일 줄 모릅니다. 남한과 북한도 끝없이 대립합니다.
이런 분쟁과 대립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납니다.
교파 간의 대립, 지도자들 사이의 대립, 신앙의 색깔로 인한 성도 간의 대립 등 대립의 양상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분쟁과 대립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불행한 영적 결과로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그 영향력이 나 자신과 사회를 지배하지 못할 때 대립이 일어납니다.
황사가 한국에 찾아오면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세상이 뿌옇게만 보이듯이,
하나님과 깊이 만나지 않으면 눈을 떠도 뜬 것이 아닙니다.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을 만나 은혜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가 비로소 형 에서를 만나러 나설 수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화해는,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행동이 아닙니다.
20년간 형 에서를 만날세라 전전긍긍 두려워하던 야곱은 그 모습 그대로는 화해의 주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을 믿고 자신을 내려놓을 때, 그는 화해의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한 화해의 주체, 평화의 주체가 되려면, 야곱처럼 먼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주체, 주체성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남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주체는 남들을 지도편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형제와의 갈등해결을 미루지 마라 (2019년 2월 18일 월요일)
형 '에서'와의 문제는 이십 년이 지났어도 해결되지 않은 야곱의 인생과제였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야곱은 하나님께 나아가 밤새 씨름하였습니다.
그 씨름 후에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무리의 가장 앞에 서서 절뚝거리며 나아갑니다.
그리고 일곱 번 땅에 몸을 굽히며 절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에서는 달려와서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을 맞추고 서로 웁니다.
20년 동안의 형제의 갈등이 해결되었습니다.
형제들은 자라면서 경쟁을 합니다.
그것이 선한 경쟁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깊은 상처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형제끼리 우애하지 못하고 깊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형제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갈등관계에 있는 형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과 화해하고자 하는 몸짓을 보인다면,
형제들의 갈등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만 말해도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2)
그것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은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와의 갈등해결을 마냥 미뤄두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형제와의 우애회복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나라를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형제와의 갈등해결을 더 이상 미뤄두지 않고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 야곱이 그의 가축과 가족을 여러 떼로 나누어 길을 가게 했을 때, 야곱과 함께 가장 뒤에 남은 자들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에서 앞에 나아가는 야곱이 최대한 겸손하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겉모양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겸손하여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 하나님, 이 땅의 교회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십자가의 겸손으로 섬겨, 갈등과 다툼이 지속되는 세상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은 평화를 이루어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이해타산'을 따지는 마음을 다 내려놓고 먼저 화해와 평화의 주체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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