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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3]진정한 복은 약함에 있다/창세기 32:13~32:32 (CBS)

colorprom 2014. 3. 11. 18:34

진정한 복은 약함에 있다 2014년 3월 11일 화요일


창세기 32:13~32:32

 

22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성경 길라잡이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20절):

여기에 사용된 ‘예물’이라는 단어는 제사 용어이다.

야곱이 형의 분노를 풀기 위해 예물을 보내는 것은 마치

신의 진로를 풀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야곱의 두려움이 컸다는 말이다(WBC 주석 참조).


얍복(22절):

압복강은 요단강의 물살이 빠른 지류로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사해 북쪽 이십 오 마일쯤에서 요단강과 합류한다(WBC 인용).

 

진정한 복은 약함에 있다 2014년 3월 11일 화요일 (창 32:13~32)

 

두려워하며 번민하는 야곱 앞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씨름을 합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이것을 기도의 씨름이라고 말했습니다(호 12장 4절).

기도는 엎드려서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저 이겨서 복을 받아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며 그의 허벅지 뼈를 꺾어 넘어뜨렸습니다.

비로소 야곱은 기도하는 자의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복은 강함이 아니라 약함에 있었습니다.

기도는 엎드리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는 자기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의 기도는 자기부정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시작과 끝이, 그리고 기도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을 지향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기도는 철저한 자기부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부정이 없이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기독교는 자기부정의 중요성을 잊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의 경영기법이 교회 안에 깊이 침투한 결과, 많은 교회들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기호가, 하나님의 열망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 교회에 넘쳐흐르며,

교묘하게 변형된 성경의 가르침과 아름답게 포장된 왜곡된 십자가의 복음이 교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기도의 능력과,

자기부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철저한 엎드림, 즉 자기부정이 없이는 십자가의 복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전환 (2017년 8월 7일 월요일) (창 32:22~31)


1543년 사제이자 천체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출간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란 논문은

당시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돌아간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지동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것은 중세의 우주관을 붕괴시키는 사고의 전환, 세계관의 전환이었습니다.

이를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도 이렇게 급격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아니 일어나야 합니다.

삶의 주인이 '나'로부터 '예수님'으로 바뀜에 따라

사고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야곱의 인생에서도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얍복 나루터의 사건이 그 분기점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얍복 나루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됩니다.

얍복 나루 이전의 인생은 태양이 지구를 돌듯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존재했던 시기라면,

얍복 나루 이후에 이르러선 지구가 태양을 돌듯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 성장해나아가는 기간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대전환이 있기 위해서는

단독자로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삶의 대전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묵상질문

 

- 야곱이 자신의 가족과 소유의 떼를 나누어 강을 건너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야곱이 받는 축복과 그의 허벅지 뼈가 꺾인 것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기도

 

-하나님, 힘을 숭배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약함의 능력을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십자가의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 하나님, 이 땅의 교회를 도우셔서 기도하는 모든 순간에 철저한 자기부정의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자기를 부인하며 주를 따르는 거룩한 세대가 일어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중심의 삶으로 전환하여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