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기는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2014년 1월 29일 수요일
창세기 16:1~16:16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 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 년 후였더라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7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성경 길라잡이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1절):
약속의 땅에 이어, 약속의 자손을 얻는 일의 장애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15장에서 땅의 문제는 400년 뒤로 미루어졌으므로 자손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2절):
사래가 여종 하갈을 통해 자손을 얻으려는 것은 당대의 관습에서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또한 사래가 선택한 방법은 15장 4절의 약속과도 직접적으로 상충하지 않는다.
사래의 입장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15절):
사래의 불임이라는 장애물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상속의 경쟁자라는 또 다른 장애물을 놓았다.
이어지는 17, 18장은 16장에서 발생한 이중적 장애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위기는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2014년 1월 29일 수요일 (창 16:1~16)
400년 뒤의 문제가 된 약속의 땅보다, 약속의 자손이 더욱 시급한 문제입니다.
당장 아브람과 사래의 나이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미룰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래는 당대의 관행을 따라 자연스럽게 하갈을 통해 자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불임이라는 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아브람과 사래의 결정은
더욱 큰 장애물을 약속의 길 위에 놓고 말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위기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위기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문제는 대처라도 빨리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문제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아브람과 사래가 그러합니다.
눈에 보이는 불임이라는 문제에 집착하다가 더욱 큰 장애물을 약속의 길에 놓고 말았습니다.
고민 끝에 악수(惡手)를 두었습니다.
진정한 위기는 밖에 있지 않습니다.
최근 높아지는 반기독교 정서를 많은 이들이 우려합니다.
그러나 한 시대의 교회를 파국으로 이끄는 문제는 우리 안에서 암(癌)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질서와 습관이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신분이 교회의 직분을 왜곡하며, 자본과 경쟁의 질서가 교회의 질서를 왜곡합니다.
문제의 근본은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는 창문입니다.
지배를 위한 권력이 아닌 섬김을 위한 직분을, 경쟁 속의 이기적 생존이 아닌 나눔을 통한 공생을 추구하여
우리 안의 위기를 물리칩시다.
성급함과 핑계댐 2017년 6월 26일 월요일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후사를 주시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신빙성있는 방법(첩을 통해 자식을 얻음)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로 임신하게 된 하갈과 여전히 불임상태인 사래 사이에
교만·질투·멸시·갈등·욕망 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임신부 하갈이 광야로 도망하게 되는 비극적인 일마저 일어나고 맙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아브람과 사래 부부에게서 나타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새겨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급함입니다. 사래와 아브라함은 성급했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행동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을 때 성급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핑계댐입니다.
사래는 자신이 하갈로부터 당하는 멸시와 모욕의 책임을 남편인 아브람에게 전가하였습니다.
그 옛날 아담이 하와에게, 하와가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듯이 말입니다.
'같이' 책임질 줄 모르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사래만 그러합니까? 우리도 자주 성급해집니다.
우리도 문제가 생기면 같이 책임지기는커녕 '남 탓'을 하고 '남 핑계'를 대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성급함, 핑계댐,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깊이 성찰하여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해결방식 (2018년 1월 17일 수요일)
요즘은 이런 통념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과거에는 농경민이건 유목민이건 수많은 가임기의 여성들은 출산의 압박감에 많이 시달렸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대를 잇기 위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이방인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과 동침하게 했을까요?
그런데 하갈이 임신하자 사라는 그녀를 하대합니다.
사라의 복잡한 마음, 조금 이해될 듯도 합니다.
심한 자괴감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반대로 하갈의 입장에서 보면 80세가 훨씬 넘은 노인의 아들을 낳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인간적으로 볼 때 참 안쓰럽습니다.
만일 그녀가 좋아하던 젊은 남성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여종의 신분이라고 해도 가련한 일입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아들을 낳아주었으니' 그것으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여주인이 자기를 모질게 대하니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화가 난 두 여인이 충돌하자 중간에서 아브라함은 어쩔 줄 몰라합니다.
아브라함이 해결하기엔 너무 역부족인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수많은 가슴 아픈 문제에 부닥치곤 합니다.
때론 사람들의 말에 위로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님에 낙심하게 됩니다.
그럴 때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내게 위로와 힘을 주소서. 아멘.
실수를 덮으시는 은혜 (2018년 2월 23일 금요일) (창 16:1~6)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릴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같이 배워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노쇠한 아브람에게 아들을 주실 것이며 그 아들을 통해 자녀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가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브람 부부는 조급해집니다. 기다리다 못해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말하자면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자신의 몸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것이지요.
문제해결을 위한 아주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이었을 뿐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갈과 동침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인간의 요청에 몸과 마음이 기울었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람은 사래의 인간적인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다는 자신의 믿음을 주장하며
끝까지 용기를 내자고 설득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을 징계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능히 덮어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 실수할 때도 징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묵상질문
- 약속의 자손을 위협하는 첫 번째 장애물은 무엇입니까(1절)?
- 약속의 자손을 위협하는 두 번째 장애물은 무엇입니까(15절)?
기도
- 내면의 위기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밝은 시선을 주옵소서.
-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들어온 세상을 극복하게 하옵소서.
오늘 행하는 나의 선택과 결정이 죄의 올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자세로 성급하지 않고 핑계대지 않으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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