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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5] 바벨, 충족될 수 없는 사람의 욕망/ 창세기 11:1~11:9 (CBS)

colorprom 2014. 1. 20. 14:25

바벨, 충족될 수 없는 사람의 욕망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창세기 11:1~11:9

 

 

성경 길라잡이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4절):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시날 평지에 거대한 성읍과 탑을 건설한다. 이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1) ‘이름’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다. 이름에 대한 집착은 가인의 집착(4:17)이며, 네피림들의 집착(6:4)이다. 즉 자기 이름에 집착하는 것은 타락한 후손의 공통점이다.

 

2)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9:1)는 명령을 거부하고 흩어짐을 면하려 했다.

 

3)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않을 것(9: 11)이라는 약속을 불신했기 때문에 탑이라는 건물을 지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9절):

형식적으로는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지만,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전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셨다.

그 방법이 창세기 12장 이후의 구원 역사이다.

 

묵상과 삶

 

홍수 이후의 세상이 홍수 이전의 세상과 같아졌습니다.

가인과 같이 자기 이름에 집착하고, 흩어지지 않으려 성을 쌓습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제 아무리 높이 쌓은 탑도,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보셔야 할 정도로 낮을 뿐입니다.

바벨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습니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에 집착하는 모습은,

가인의 후손이며 바벨에 성과 탑을 쌓은 사람들의 후손임을 스스로 입증합니다.

 

이름에 집착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역사는 한 사람의 명예를 위해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면 왜 그토록 사람이 이름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사이비 영생’을 누리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름만이라도 남겨 자신의 흔적을 보존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생이 아니라, 영생을 훔쳐보고 만든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바벨이 미완으로 남았듯이, 사이비 영생도 완성될 수 없습니다.


죄가 자기 이름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구원은 자기 이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두 가지 힘이 충돌하는 공간입니다.

바벨의 후예들은 지금도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자기 이름을 높이는 세상을 건설했습니다.

타인의 생존권보다 자신의 소유권을 더 중시하며, 자신이 타인과 얼마나 다른지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더 이상 이름과 이름이 충돌하지 않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냅니다.

 

자신이 타인과 얼마나 다른지가 아니라, 얼마나 같은지를 주목합니다.

어떤 양식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묵상질문

 

- 사람들이 어떤 동기에서 바벨에 성과 탑을 쌓았습니까?

- 불순종에 대한 이전의 심판과 바벨에서의 심판이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까?

 

기도

 

- 자기 이름을 위해 살지 않게 하소서.
- 적자생존의 경쟁이 아닌 더불어 사는 ‘공생’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