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친정] h) 오늘...아버지가 엄마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colorprom 2012. 10. 27. 14:17



2012년 10월 27일, 오늘...아버지가 엄마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병원침대에서... 


2012년 10월 17일 오전에 '어지럽다'며 쓰러지신 아버지.

뇌출혈, 지름 5센티정도 피가 고여있는데 오늘의 일 만이 아니라 전에도 출혈이 있었답니다.

다행인 것은 뇌가 전체적으로 쪼그라들어 뇌가 부어도 좀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


첫날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초인적인 힘으로 당황했고,

그로부터 일주일은 느낌으로 '아, 제사 관련된 일 생각만 하고 계시구나...'싶었습니다.


그리고 24일, 꼭 1주일이 된 날에는 단편적인 말이지만 '아, 아들과 함께 살고싶으셨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26일, 어제와 27일 오늘은....'죽고싶다, 도와달라'하시더니 '엄마~엄마가 3일만에 죽었어~'하며

우셨습니다.


그동안 병원에서 느낀 점... 아버지의 머리 속에는  가장 중요한 단 3가지 사안만으로

꽉 차 있다는 것.



1.  문중 산소건 /


  장손으로 젊은 나이부터 부모형제 생계를 책임지신 분으로 철도공무원 37년 퇴직 후에는 지금까지

  종친회 회장으로 온갖 가문 제사와 산소를 책임져 오셨습니다.

  아버지에게 효도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산소 동행. 가문제사 참석'입니다.

  아버지 형제 중 아무도 협력을 안하고 혼자 가문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늘 불만이셨고,

  드디어 장손인 아들, 제 남동생의 '산소일을 물려받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는 깊은 시름에 빠져있는 중이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조선교 신자였던 86세의 장손에게는 어찌할 수 없이 깊디깊은 시름이었습니다...

  

  쓰러지신 후 일주일간은 병원 침대에서 그저 산소갈 준비를 하느라 바쁘셨고,

  언제 아들이 차를 몰고 자신을 데리러 오나 그 걱정 뿐이셨습니다.


  아...아버지께 산소는 정말 '신앙' 그 자체였슴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2.  형제에 대한 배신감 / 


  아버지는 6형제 장남이었습니다.

  그 어리고 상큼하던 시절, 대학교 합격을 해 놓으시고 장남으로서 집안을 지키기 위해 

  군대 대신 철도청을 들어가셨습니다.

  철도공무원으로 37년을 재직하는 동안, 부모님과 5형제 그리고 우리 6식구의 가장으로 지내셨습니다.

  엄마가 결혼했을 때 6형제중 막내였던 고모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답니다.  

  그때 식구들 식량으로 한달에 쌀을 두가마 먹었다네요...외상으로 두가마 먹고, 월급타면 갚고...

  언제인가 보았던 누런 월급봉투에는 줄이 수도없이 쳐져있었습니다.

  교육보험, 공무원학자금 융자, 뭐뭐...어린 눈에 알 수도 없던 수없는 공제금들로 빠진 금액들...

  그래도 어려운 시절, 정해진 월급이 있는 집이었으니 그래도 부족한 대로 안정적인 가정이었습니다만,

  쪼개 나갈 곳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알뜰살뜰 이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들도 부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형제들도 다 70세 이상이 되셨습니다.

   나보다 9살 많은 막내고모가 66세 이시니까요.

   얼마전, 몇달 전부터 아버지를 제외한 동생들이 묘한 모함과 의심을 하기 시작했더랍니다.

   -종친 일(선조들 산소일 등등)로 나라에서 보상받은 돈을 아무래도 큰형님이 독식한 것 같다...

   행동대장 막내삼촌이 86살 노인 형에게 찾아와 통장 내놓으라 다구치더니 결국 빼앗아 갔답니다.

  

   그러던 중에도  '내가 장가갈 때 형으로서 해 준것이 뭐있느냐' 하더랍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엄마는  - 그 시절에 굶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야지...라고 말을 못한 것이 한이된답니다.

   세상에나...70넘은 사람이 부모가 살아있다해도 차마 할 수 없을 말을 86세형에게 할 말이겠습니까?


   그보다 당신보다 젊은 동생으로부터 '폭력의 힘'을 겪은 후의 그 '두려움'은 어떠하셨을까요?

   

   그리고 늘 희생을 강요했던 지아비로서 80된 아내에게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을까요?

   

   그때부터였을까요?  베란다에 나가 물끄러미 서계시던 모습...그냥 노인이라서 그러신 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어느날, 문득 '........교장....교활하고 나쁜 사람입니다....'하셔서 알았습니다.

    딸같은 막내동생, 교장선생님이 되었다고 그렇게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막내여동생, 그 동생이 

    그 일에 합세했슴을 알고 그렇게 가슴아파하셨슴을 알았습니다.


3.  아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


   그렇게 돈을 아끼고 모으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아들집은 당신들과 함께 하기엔 작으니 돈을 보태 큰 집을 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당신 집을 팔아 작은 집을 사실 때 사실은 그 돈을 보태 아들네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24일 / -00집은 **평이라 잘 데가 없어요.  넓은 집은 비싸니 어디 시골로 가야겠는데, 어디 사지?  어디 사지?...

    (친손주)00은 안오나?...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남편의 한마디, '장인어른 혼자 조선시대 사시네!'


지금 안정이 필요하고 이웃에 피해될까 1인실에 계십니다.

하룻밤 입원비 40만원 + 하루 간병비 8만원 + 기타 검사비, 치료비...

하하하~~~아버지, 편히 못쓰시고 아껴아껴 모으신 돈, 호텔같은 병원에서 다 쓰셔요!!!


오늘 잘 걷지 못하는 엄마가 오셨습니다.

엄마 얼굴 보더니 우십니다.

엄마가 슬그머니 손을 잡아드렸더니 다른 한 손으로 마주 잡으셨습니다.

엄마가 머리를 외로 꼬시며 혼잣말을 하십니다.

- ㅊ~일찍 좀 다정하게 대해주지.  늘 무섭기만 하더구만...이리 약한 모습을...일찍 좀 보여주지...


동생들은 아버지가 한번이라도 우리를 좀 알아봐주시기를 바라지만 저는 아닙니다.

이대로 삼촌, 고모들 일이나 가문 산소일들 다 잊고 평화로운 눈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평생 지고오신 당신의 숙제들, 의무들을 다 잊으시고 마음편히 계시다가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생전 처음 아버지를 쓰다듬어 드렸습니다.  

얼르고 달래며 밥을 먹여드리고 슬쩍 옆눈으로 보며 소변기 대어 드리고, 기저귀갈며 앙상한 엉덩이 어루만지고,

고인 눈물을 닦아드리며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어제는 우리 작은 애가 할아버지 만져드리고 이 닦아 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 큰애가 할아버지 콧털을 잘라드렸습니다.

17년 전의 친할아버지 때는 곧장 중환자실로 가셨고, 우리 모두도 어려서 이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이제 숙제일일랑 다 놓으셔요.

목숨같이 지키던 종가집 장부도 다 잊으셔요.

참 잘 하셨습니다...애쓰셨습니다....

부서질 듯 마른 몸에 곧은 콧대가 얼마나 단정하신지요.


엄마는 '이리 될 것을 뭐 그리 치열하게 살았노...'하시지만, 아니지요.  이리 되더라도 치열하게 살아야지요!!!

그게 옳지요, 옳지요!!!

단지, 좀 풀 줄도 아셨으면, 넘길줄도 아셨으면, 좀 우리 마음이 좋았을 것을요...


휠체어로 1층에 내려갔더니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 예식장이냐?'고 계속 물으셨습니다.

아직도 병원에 계신 것을 모르십니다.

그 와중에 우연히 병원에 오신 양정고 동창분을 만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몰라보셨습니다.

-아니, 저번 모임에도 나왔는데...


참 사람일이 그렇구나 싶습니다.

정말 내일이 확실한 것이 아닌 것이구나...싶습니다.

일상이 일상인 것, 그날이 그날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그것이 기적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아버지, 이제 잊으세요.  동생들 일도 잊으세요.  제발 잊으세요...

남편은 고혈압에 심장 스텐트박은 엄마가 고모들이나 삼촌들을 만나 흥분하실까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사실은 전혀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

그저 가족이라는 말을 '평안, 사랑, 우애등등의 ' 말로 미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싶습니다.

가족, 가문...이라는 말이 종친회회장집 맏딸인 내게는 썩 이쁜 말이 아닙니다...

나는 장남이 아니고 출가외인인 딸이어서 종손인 남동생에게 무지무지 미안합니다.....




병원다녀와도 일이 손에 안잡혀 끄적이고 있습니다...가을비 오는 토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