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프라이팬의 기름

colorprom 2013. 3. 11. 11:53

2013년 3월 9일 토요일, 중앙일보 / 김진경의 쮜리히통신 (Saturday 19)

남편과 시부모 2시간 '전화 수다'

스페인 사람들, 왜 이러는 걸까요?

 

제목에 '시부모'가 있어 열심히 읽었을거다, 내가.

글은 스티븐 돌드리 감독의 2000년 작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 파업 중인 탄광촌에서 태어난 한 마리 백조의 성장을 그린 이 영화는 무척 감동적입니다....(중략)...

빌리는 런던의 로열발레학교 입학 시험을 본 뒤 결과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마침내 통지서가 집에 도착했는데, 빌리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형은 궁금해 미칠 지령이죠.  하지만 봉투를 열어보지 않습니다.

집에 온 빌리는 탁자 위에 놓인 통지서를 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갑니다.

거실엔 터질 듯한 침묵이 흐릅니다.

참다 못한 아버지가 방문을 열었고, 다음 장면에서 아버지는 환호의 비명을 지르며 동네 거리를 내달립니다.

 

글쓴이는 빌리가 부러웠다고 썼다.

- 로얄발레학교에 합격해서가 아니라 11살 소년에게 '편지를 혼자 뜯어볼 권리', 

그러니까 빌리의 '사생활'을 인정해준 가족이 있어서요......라고.

 

아마도 글쓴이는 스페인 사람과 결혼을 했나보다.

결혼 때도 글쓴이와 남편은 모든 실제적인 결혼준비, 집, 세간 마련까지 어른들 도움없이 스스로 했단다.

스위스에서도 자녀 결혼 준비에 부모님들이 나서는 일은 물론 없고.

그녀의 남편은 부모를 '어머니, 아버지'라 아니 부르고 이름을 부른단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아침, 스위스에서 스페인으로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넘게 수다를 떤단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으냐는 와이프 질문에 웃으며 대답한단다.

- 친구니까.  친구한텐 밀린 말이 많잖아.

 

마지막 부분이 아주 결정적으로 감동적이었다.

이하 기사문 그대로 옮긴다.

 

- 세상 모든 관계가 그렇듯, 부모와 자녀 사이도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더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 소설가 김영하가 '옥수수와 나'에서 절묘하게 표현했더군요.

 

          요즘 어떤 엄마들은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더라.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엄마들이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 같아 아슬아슬해.

          아들이라고 부르는 순간, 엄마와 아들 사이에 어떤 완충지대도 없어지는 거야.

          섹스 파트너라는 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 말은 프라이팬에 뭘 구우려면 말이야, 먼저 기름을 둘러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서로 들러붙지를 않지.

 

 

 

속이 후련했다.

오랜 의문의 답을 찾은 듯했다.

그래...살과 살을 맞대던 시절, 그야말로 슬하의 자식을 가진 부모 시절에서,

자식이 성장하듯, 부모도 자식과 '친구'가 되는 관계로 진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너는 누가 뭐하도 내 아들이다, 너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부모자식간은 천륜이다...하며

자식을 어른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그래서 놓아주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자식이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 못하고, 정체성을 잃는 상황이 '사랑과 전쟁'의 많은 소재 아닌가.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듯, 부모자식 간에도 성인을 대하는 예의를 갖는 것,

어떤 때는 고리타분한 듯 보이는 예전 예절이 더 성숙하다 생각되기도 한다.

 

옛날 TV드라마, '허준'에서 오랫만에 집에 들어온 허준을 맞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초가집 방안에서 반가운 마음에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인사를 받던 어머니 모습,

지금 기억에 말도 반말이 아니었다.  성인을 대하는 마음, 예삿말이었다. '오셨는가?'식으로.

반가움에 맨발로 뛰어나간 것은 마눌님, 황수정이었다.  (맞나?  ㅎ~)

가난했지만 참 의젓한 어른의 모습이었다고 기억된다!

 

큰 애가 데이트가 한창이다.

쉴 틈없이 카톡으로 신호가 오간다.

궁금하다...ㅎ~~~애가 화장실 간 사이, 샤워하는 사이, 카톡문자가 오면...솔직히 몇 번 보기는 했다.

머리털며 나오는 아이에게, ' 카톡 왔다.' 또는 '집에 들어갔단다.'하며 자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그 이상은 아니었다!!!  에헴...그런대로 괜찮은 엄마렷다!!!

 

친구...그래, 친구.  참 좋다!

부모자식이라는 관계가 친구관계로 바뀌는 거다.  친구관계로 승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성인이 된 너희들은 너희의 가족에서 새로운 부모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전문학원...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것은 '어른공부 학원'이 아닐까 싶다.

 

김진경님, 고마와요~~

 jeenkyungkim@gmail.com

김영하님의 '옥수수와 나'도 꼭 사서 읽겠습니다.

김영하님도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