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친정] '무자식 상팔자'(Jtbc)에 우리 친정아버지 출연? ㅎ~

colorprom 2013. 1. 5. 15:38

2013년 1월 4일 금요일자 중앙일보, '양선희의 시시각각'을 읽다가 피식~웃었다.

 

[가족제도, 이게 최선입니까]

 

...이 드라마는 '행복하게 살자'가 인생의 모토인 이순재 할아버지와 그 세 아들네 식구들이 지척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활달하고, 자손들은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넘친다.  요즘 보기 드문 복받은 집안이다.....들여다보면 이 집에서 행복한 건 할아버지 뿐이다. 국 한술 뜨면서도 잔소리가 만리장성인 할아버지를 인내하며 살아온 할머니는 몸에서 사리가 한 말은 나오게 생겼고, 고분고분한 이 집 큰며느리 얼굴은 중증 만성 화병 환자처럼 보인다.  여기까진 여성들의 헌신과 인내의 토대 위에 지탱하는 전형적인 한국 대가족 모습이다........가족해체는 이제 '화두'가 아니라 '대세'다.................

 

김수현 작가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로 시작된 기사는

'가족해체'의 현실과 '새로운 가족형태'의 문제, '결혼'의 어려운 문제로 '비혼가족'이 많아지는 현실을

통계숫자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20년 후엔 (고령화 때문에) 전체 가구의 70%가 1,2인 가구가 될 거'라며

따라서'역설적으로 이런 사회일수록 가족은 더욱 필요하다.'고 결론을 맺고,

더 이상 이순재할아버지 가족처럼 결혼이나 혈연으로 만들어지는 가족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앞으로의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자고 글을 맺었다.

 

 

이 심각한 사회문제 기사를 보며 나는 순전히 우리 친정을 생각하며 웃었다.

우리집에는 정규방송만 나오는 관계로 이 연속극을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연속극을 보더라도 사실 '이순재'님만 나오면 나는 우리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꼬장꼬장, 버럭, 잔소리, 삐죽웃음까지...희안하게도 다 이미지가 맞아떨어졌다.

 

양선희기자의 글에 나오는 할머니는 또 어떤가.

몸에서 사리가 나오게 생긴 할머니는 그대로 나의 친정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는 참다참다 '홧병'이 났는데, 병명은 '고혈압, 당뇨, 심장, 관절염', 등등이다.

최근에는 '우울증'도 하나 보탰다.

 

같이 사는 며느리 묘사는 젊은 시절의 엄마 모습이다.

다행히 지금 친정의 외며느리는 같이 살고 있지는 않아서 공식적인 만남 이외에는 아버지를 겪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외아들과 단 하루도 함께하지 않으시고 분가시켜서 우리를 놀래키셨다.)

 

지금 생각하면 예전의 우리집은 늘 '휴전선'같은 비상경계령의 상황이었다.

골목에 아버지 퇴근 발자국소리만 들려도 쥐새끼 쥐구멍 찾듯, 솨솨삭~

제각각 방으로 들어가 저마다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있는 척 하다가

'으흠~'소리에 후다닥 마루 끝으로 나가 서울식 책상다리 절로 아버지를 맞았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하며.

밥을 먹다가도 반찬투정은 언감생심, 밥풀 하나 흘리거나 남기면, '농부가~'부터 일장 훈시가 시작되고,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1년 농사를 다 훑은 후, 겨우겨우 눈물콧물 훌쩍거리며 밥상을 끝내야 했다.

 

토요일은 공책검사하는 날...퇴근과 동시에 안방에서 세수를 하시고 저녁밥상을 받으시면,

4형제가 줄줄이 아버지 앞에 불려나가 공책과 책을 검사받고 눈물 한 대접 뽑아내고

아버지 등뒤의 장에서 새 공책을 받아나올 수 있었다.

공포의 토요일...

 

나는 지금도 하얀 종이나 새연필을 쉽게 쓰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모아서 모셔만 놓고 있다.  ㅎ~

나의 어린시절은 엄격한 아버지 덕분에 좀 두렵고 힘겨웠다. 

탈출은 결혼밖에 길이 없었다~ㅎㅎㅎ~

 

그렇게 무섭고 엄하고 알뜰한 아버지를 어려워는 해도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 스스로도 무섭게 절약하셨슴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늘 닳고 달아 구멍이 숭숭 난 런닝구를 입고 계셨다.

하기사 그때 그 시절에 어렵지 않은 집이 얼마나 있었을까만은,

그래도 월급 확실한 공무원이셨으니 우리 4형제 6식구만 먹고 살았다면 그보다는 나았을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5동생들, 그리고 우리 6식구 모두를 챙기시며

혹 와이프나 자식들의 불평을 입도 뻥끗 못하게 미리 공포정치를 하신 것은 아니었을까..ㅎ~

하기사 우린  불평불만 데모할 생각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인 줄 알았다...어디 감히 아버지께...

 

어렵게 열심히 당당하게 살았어도 보람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이순재할아버지의 '치과의사 손주'는 '결혼을 않겠다~'했고,

나는 '엄마같이 살지 않겠다~'했는데, 결혼을 해서 늘 삐걱거리며 산다...

 

어렸을 때는 여자라는 것이 참 서럽게 느껴졌었다.

시집 제사 챙기며 친정에 못 가 숨어 우는 엄마를 꽤 여러번 보았었고,

며느리인 엄마에게 할머니나 고모들, 삼촌들은 어린 눈에도 주인집 사람들 같이 보였었다.

며느리인 엄마의 신분과 자식인 나의 신분이 묘하게 다르다는 생각도 헸었다.

나는 사랑스러운 시댁의 손녀딸이었다. 

나는 李씨 핏줄이고 엄마는 하나뿐인 姜씨사람이었다.

 

 

...앞으로는 혼자사는 세상이 온단다.

하기사 지금 시어머니도 혼자 살고 계시고, 친정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엄마는 혼자 집을 지키신다.

앞으로는 가끔씩 보는 자녀들도 없을 거란 얘기네...이래저래...너나나나 할 것 없이.

 

노후문제, 가족문제가 다 같은 문제렷다~그러니 어찌 살 것인가, 삶의 문제이기도 하겠다.

확실한 것은 이제 이순재할아버지나 우리 친정아버지같은 삶은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그땐 그랬지~'정도 소재거리일 것이라는 것.

그리고 실제 우리 아버지는 노후에 이순재할아버지처럼 혼자만 행복하지는 않으셨다.

최선을 다해 돌봐준 동생들은 형으로서 뭐 해줬냐며 대들었고,

무지개같은 아들과 며느리, 친손주들은 당신 손에 닿지않아 더 외로우셨다.

우리는 이순재선배님이나 우리 아버지를 보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저러지 말아야지, 아들만 바라보지 말아야지, 아들손주만 바라보지 말아야지, 같이 살아야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지, 그러려면 돈을 벌고 관리도 해야겠고...같이 있어주는 마누라한테 잘해야지....등등.

소노 아야꼬의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이런 책도 열심히 보면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강물이 바다에 이르면~~~차라리 쉬울 것이다.  다 그렇게 사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 과정 중이니 어쩔 것인가.

과정에 사는 우리가 위로는 이순재할어버지를, 아래로는 자식들 인생관을 봐주며 살 밖에.

이래저래 우리만 고달프다...아~흐~

 

그것도 나의 몫, 우리 세대의 몫!!!  이러한 때에 태어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여~

주체적 생각, 주체적 삶!!!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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