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아침 출근길의 검은 선글래스 버스기사아저씨~

colorprom 2011. 11. 14. 12:27

 

2011년 11월 14일 오후 12:37

 
모처럼 햇살좋은 아침, 좀 걷기로 하고 한강다리 중간에 버스에서 내렸다.
한강다리 중간부터 용산까지 약 20분을 걷고 다시 버스를 탔다.  (30분 이내 공짜환승, 최고!!!)
나이를 알 수 없는 선글래스 기사아저씨.
마침 빨강불에 차가 서있는데  전화가 왔다.

-예에~형님. 
-오늘 우리 김장한다는데 이따 오세요, 형님. 
-오셔서 술 한잔하세요, 형님.
-어머니가 닭 한마리 안삶으시겠어요, 형님?!
-예에, 이따 오세요, 형님.

전화를 끊으며  뭐라뭐라 혼잣말을 하는 입이  웃고있었다.
형님, 형님을 연발하니 버스기사와 '조폭형님들'이 얽혀  혼자  슬며시 웃었다.
문득 검은 선글래스 기사의 얼굴이, 웃는 눈이 보고싶었다...

친형일까, 동네 아는 형일까...결혼은 했을까...

....각자 자리잡고 일하는 사람, 왔다갔다 총괄하며 감독하는 사람, 배추 고갱이 뜯어 굴싸먹고 먹이는 사람...
채반에 절인배추 쌓여있고, 커다란 비닐로 양념배추 갈무리하고...그리고 마당에는 커다란 독이 묻히고...
얼추 독 안에 김치 다 들어간 저녁무렵, 볼그레한 볼로 소주 한잔, 삶은 닭, 삼겹살 구워먹고...쌈 싸먹고...
좁은 방에 이불이 깔려있고,  온기를 잡아놓은 이불 밑으로 손을 스윽 집어넣으며,
-이리 손 넣어봐, 따뜻해....
고추물 든 벌건 손과 팔뚝이 가물가물 근질근질...

김치독을 파묻는 집은 이제 서울에서는 거의 없을 터이고,
깨끗하게 각진 플라스틱 통을 김치냉장고에 넣는 집이 거의 다일 텐데,
싱겁게도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기사아저씨의 통화를 들으며
한바탕 옛날 김장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문득
늘 사각 김치통에 김치담아주시는 시어머니 생각에 전화를 넣었다.

-어머니, 이번에는 김치담그실 때 연락하세요.  같이 해요...

옛날 마당있는 시집에 살 때, 왜 그리도 힘이 들고 마음이 버거웠었을까.
사는 게 별 거 아닌데, 이렇게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건'데...

전화를 끊으며 웃던 기사아저씨가 어찌나 사랑스러워 보이던지...ㅎㅎㅎ~
'그런데요, 아저씨, 운전 중에 통화하시면 아니되시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