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미목사님

요한복음 2장]

colorprom 2022. 9. 21. 00:08

임은미(유니스) 목사님 묵상입니다.

2022. 9. 18. 주일

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사람을 기대하지 않고 사랑만하신 우리 주님!" 요한복음 2장

요한복음 2장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
24절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But Jesus would not entrust himself to them, for he knew all men.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의탁하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을 아셔서라고 하시는데
모든 사람을 아신다는 그 뜻은?
사람의 속에 있는것이 무엇인지 아셨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닌가 한다.

태어나자말자
우리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있다.
형제 자매가 있다면
당연 형제 자매와의 관계
친척들과의 관계
학교친구들과의 관계
교회 선생님과의 관계
성도들과의 관계
직장에서 맺는 사회적인 관계들
이웃과 맺는
사는 주거지에서의 관계 등 등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감사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마울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고맙지 않아도 그들에 대한 감사는 할 수 있을까?
있어야 할 것 같다.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세월이 이젠 많이 흘렀는데 어느교회에서 내가 3개월간 단기 담임목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 3개월 기간안에 나는 한 주일 설교를 "속사람의 치유"에 대한 것으로 했다.

설교를 하고 있는 중인데 어느 장로님이 밖으로 나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앗? 내가 설교중인데 왜 나가셨을까? 내가 뭐 잘못한 말이 있었나?

나중에 설교 마치고 장로님을 따로 만난 적이 있어 그 때 상황을 여쭤 보았다.
"장로님 그 주일날 왜 제가 설교하는데 밖으러 나가셨어요? 제가 한 말 중에 무슨 불편한 이야기가 있으셨나요?" 그랬더니 그 장로님이
내 설교를 들으면서 일제시대때 당신을 너무나 괴롭혔던 수학 선생님이 기억났다고 한다.

용서해야 할 사람이 그 사람인데 설교 들으면서 그 시절이 떠오르니 견딜수 없이 그 사람이 미워서 예배시간에 자리를 떠났다고 하신다.

그 분은 정직한 분으로 훌륭한 평판을 받는 분으로 나는 알고 있었기에
"혹시 장로님이 그렇게 정직한 분이 되시기까지 어쩌면 그 수학선생님의 반면교사된 영향력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라고 여쭤 보았더니..
한참 생각하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맞다고 한다.

정말 그런 인간(?)이 되기 싫어 당신의 삶을 열심히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으셨다고 한다.

그러니 그 사람은 반면교사가 되어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할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 좋은 기억만 가져다 주는 만남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좋은 만남이 아니었어도 우리는 "감사해"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I urge, then, first of all, that requests, prayers, intercession and thanksgiving be made for everyone --

디모데 전서 2장 1절 말씀이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감사하라는 말씀이 이 구절에 포함되어 있다.

내 나이 58세인가.. 그런거 같다 ㅎㅎ
왜 빨리 60이 안되는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거의 60이라는 세월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보통은 다 좋은 기억들의 사람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자 말자 내게 나쁜 기억을 준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엔 다 좋은 만남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귀는 과정에서
나를 배신한 사람도 있고
나에게 실망한 사람도 있고
내가 실망한 사람도 있다.

우리가 하는 말 중 하나
"처음에 그렇게 안 봤는데.." ㅎㅎ
즉슨?
처음엔 다 좋은 이미지였는데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만남들에 우리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왜 저런 사람과 나는 만났을까?"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에 의아심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겠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내 삶에서 내가 살아 있을 때 나 보다 먼저 그 누군가가 하늘나라로 간다면
난 누구로 인하여 가장 마음이 섭섭할까?

이 땅에서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나의 마음에 가장 살아있는 그리움을 줄 사람은 누구일까?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 듣는 말 중 하나는
"살아 계실 때 잘하라!" 는 말이 아닌가 한다.

부모님뿐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있을 때 잘하라" 라는 말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들이 언제 우리들의 곁에 더 이상 없다해도 우리들이 "좀 더 사랑해 줄걸" 이라는 후회는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사람은 믿어야 할 대상도 아니고
기대해야 할 대상도 아니고

다만 더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하는 대상임을 오늘 묵상 구절을 대하면서 더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예수님을 본 받는 삶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을 의지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끝까지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야 함이 아닌가 합니다.

상대편을 바꾸기 보다는 나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빠른 방법임을 명심하고

남들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접고
그들을 이전보다 내가 더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의 순서를 바꿀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아직은 나에게 남아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아직은 함께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