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하늘만 허락한 ‘결심’
옛 가십 기사 읽는 응큼한 취미가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스캔들은 꽤 흥미진진하다.
이를테면 나는 외할머니가 좋아하던 가수가 스캔들의 여왕이었다는 사실을
옛 기사들로 알게 됐다.
‘선데이 서울’ 1970년 5월호 기사는
“스캔들의 가희가 또 스캔들을 날리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혼한 전 남편의 친구와 살던 중 새로운 남자를 만난 그는
언론이 떠들자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말했다.
“내 나이 서른인데 불장난할 때는 아니잖아요? 이렇게 된 이상 결혼할 생각은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스캔들은 60년대 최고 영화배우들의 간통 사건이다.
1962년 당대를 풍미하던 두 사람은 간통으로 고소당했다.
남자는 30대 유부남이었고 여자는 20대 청춘 스타였다.
세상은 난리가 났다.
“서로 수갑을 차고 교도소로 들어가기 전 미소를 짓는 최군과 김양”이라는 캡션이 달린
보도 사진은 꼭 찾아보시길 바란다.
정말이지 한국 연예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봤다.
통렬하게 사랑의 본질을 파고드는 영화였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불륜 미화라 불쾌하다는 꽤 젊은 관객 평이 이구아수 폭포처럼 쏟아졌다.
어떤 기사는 “불륜을 미화한다는 관람평까지 나오면서 관객몰이에 실패했다”고 썼다.
이런 시대라면 1960~70년대의 스타들은 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더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이혼을 우리보다 더 많이 겪은 세대라 불륜에 더 민감한 걸지도 모르지.”
간통죄는 2015년 사라졌다.
헌법재판소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그것이 개인의 선택을 개인의 몫으로 돌려주는 사회적 진보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세대가 그것을 더는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노래방에서 오랜 18번인 엄정화의 불륜 찬양가
‘하늘만 허락한 사랑’을 부르는 소극적 저항밖에 없을 것이다.
남의 남자 뺏는 노래가 이토록 애절할 수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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