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김광일]죄와 벌은 공평해야

colorprom 2022. 6. 10. 12:56

[태평로] 죄와 벌

 

비리 드러나 벌을 주는데 정치보복이라고 할 수도
정상화인지 보복인지는 국민이 선거로 심판한다

 

입력 2022.06.10 03:00
 
 

전설이 된 소설가 박경리·박완서 두 분께 글을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물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 두 분 대답이 똑같았는데 그것은 “증오”였다.

사악하고 불공평한 세태를 미워할 줄 알아야 글이 나온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응징의 열정이 문학일 수 있다.

무협 영화에서 침대 밑에 숨은 소년은

부모가 악당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일생의 목표를 원수 갚기로 정한다.

‘부모님 원수’는

소년이 소림사에서 20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견뎌내고 무림의 고수가 되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문재인 전 대통령 배웅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적폐 청산, 정치 보복, 죄와 벌, 이 셋을 생각한다.

 

앞 정권은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의 경계가 흐릿했다.

과거에 당한 게 있다면서 그걸 되갚은 측면도 있었다.

 

새 대통령은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상식적 입장을 내놓는다.

지난 5년 비리 의혹의 당사자는 흠칫할 것이다.

죄와 벌, 엄중한 말이다.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사저 앞 시위도, 화물연대 파업도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다.

 

예전 대통령들도 비슷한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수사 검사 출신 대통령이 하니까 달리 들린다.

 

‘대응’이란 사법 처리 예고다.

대처 전 영국 총리처럼 한다면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악습을 바꿔놓을 수 있다.

 

청산, 보복, 벌, 이 셋은 약간씩 겹치는 부분이 있다.

청산하려고 벌을 주었을 뿐인데 보복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할 것이다.

정치적 해석이 분분해질 것이다.

 

하지만 억울할 것 없다. 임기 끝에 국민이 선거로 심판해준다.

그것이 청산이었는지 보복이었는지 들통나게 돼있다.

정권 교체란 그런 것이다.

 

대통령 말대로 죄와 벌 문제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검찰은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던 비위 수사철을 다시 꺼내는 분위기다.

법대로 대응하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사람은 떨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여성 의원은

“검수완박 안 하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올여름이 다 가기 전에 ‘청산을 청산해야 하는’ 운명적 아이러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운명’이란 회고록을 쓴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회견에서 윤 대통령을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이 볼 때 아이러니는 ‘윤석열’이 아니라 ‘문재인’이다.

‘윤을 키운 8할’이 문재인·조국·추미애일 테니 심경이 착잡했을 것이다.

 

‘드라마 아이러니’라는 게 있는데, 관객은 알고 있고 무대 배우만 모르는 것을 말한다.

관객은 줄리엣이 진짜 죽은 게 아님을 알지만 로미오는 그걸 모르고 목숨을 끊는다.

소주성·탈원전이 잘못이라는 것을 국민이라는 관객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정치 무대에 선 본인은 몰랐다.

 

민심은 총천연색이다.

팬덤을 등에 업은 강경파는 흑백으로만 본다.

거기에 올라타면 선동가다.

 

“우리 이니 맘대로 했던” 지난 5년은 영화 ‘트루먼 쇼’와 같았다.

국민은 세상 물정에 깜깜한 배우를 질리도록 관람해야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왔다”고 했고 “사람이 먼저”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 사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 아니라 특정 진영을 일컬었다.

 

국민은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한다”고 느낀다.

‘그들만의 세상’처럼 전도돼 있는 것들은 정상화가 절박하다.

 

오래전 박찬욱 감독은 송강호 주연으로 ‘복수는 나의 것’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등장인물들의 복수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떤 대통령은 ‘정치 보복의 악순환 고리’에 스스로 갇혔다.

이제 그 고리를 끊는 올바른 대통령이 나올 때다.

 

정권이 ‘선택적 응징’을 하면 안 된다. 그게 보복이다.

죄와 벌은 공평해야 한다.

후임은 전임의 오류를 되풀이하면 안된다.

 

‘윤석열의 정의’는 ‘문재인의 정의’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