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미목사님

에스겔 42장]"우리의 참된 거룩은 십자가입니다!"

colorprom 2022. 4. 17. 16:59

임은미(유니스) 목사님 묵상입니다.

2022. 4. 16. 토요일

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우리의 참된 거룩은 십자가입니다!" 에스겔 42장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거의 처음 하는 사역은 카톡사역인 것 같다.

새벽에 도착해 있는 이런 저런 카톡 문자를 읽고 잠을 좀 깨고 ㅎㅎ 그리고 묵상을 하는 편이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 것 같으면 자기 전에 묵상을 해 놓고

그리고 잠을 자는 때도 요즘은 꽤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문자들을 읽게 되면 잠시 기도도 해야한다.
음.. 어떤 이야기들을 내가 내 묵상에 올리면 읽는 이들에게 은혜가 될까??

은혜가 된다는 것은 읽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글들을 나로서는 의미한다.

 

새벽에 올라 와 있는 문자들은 보통(?) 밤새껏 힘든 이야기들에 대한 문자들이다.

상상이 되는가?
눈 뜨고 일어났는데 처음 접하는 문자들은 밤새껏 힘이 들어 잠을 못 잔다는 문자,
극단적인 생각하고 있다는 문자, 제발 자기를 살려 달라는 문자,

직접 당신 이야기가 아니면 당신들의 지인의 힘든 이야기들..
나 보고 누구누구를 만나 달라는 이야기 등등

 

이제는 이렇게 새벽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하루 생활의 패턴(?)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전에는 이런 일들이 많이 힘들었으나 이제는 나름 익숙(?)해 지기도 했고

나의 자리를 "영적 119 의사(?)" 라고 생각하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아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새벽에 이런 문자가 와 있다는 것은 문자 보낸 사람은 밤새껏 정말 힘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야 듣는 그 자체로 마음이 무거울 수 있지만

밤새껏 이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의 마음은 오죽할까.. 생각하면
내가 모든 사람들을 기도 부탁 받는 대로 막바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권면해 주는 말을

해 주지 못함이 오히려 미안하다고 하겠다.

 

어떤 분들은 당신이 5000원 헌금 내는 사람인데 기도제목 보낸다고 말하는 분도 있으시다.

아마 기도제목 보내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헌금은 이렇게 조금 보내는데 기도제목이 너무 많아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는 분도 있으시다.

 

언제인가 어느 분은 무당한테 가서 굿을 해도 30만원 내면 밤새껏 자기를 위해 굿을 해 주는데

어떻게 교회는 헌금 받으면서 기도는 그렇게 짧게(?) 해 주냐는 말을 하신 분도 있으시다.

음... 그 부분은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당은 돈을 받아야 굿을 해 주는지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 믿는 사역자는 헌금 안 받아도 기도해 드린다.

아주 큰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나에게 기도 부탁하시는 분들 절대로 헌금 내니까 기도해 달라는 말씀 안 하셔도 된다.

나에게 선교헌금 안 보내도 된다.

기도 부탁 하시는 것과 선교헌금은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기도 부탁 하시면 꼼꼼히 기도해 주시는 기도 담당전도사님을 내가 월급 주고 채용했지만

그 말이 기도 부탁하면 헌금 내라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감사한 것은 이렇게 기도를 담당하는 전도사님이 따로 있다는 말을 묵상에 올린 후에

이 말이 든든해서 이제 마음껏 기도제목을 보내시겠다는 분들이 계신다.

반갑다!!

신앙생활에 절대로 독불장군 없다
서로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너무나도 필요한 것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중보기도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기도 부탁을 받으면서 없잖아 안타까운 것은
많은 분들에게 필요한 것이 "성경공부"라는 것이다.

한방에(?) 기도 받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대적기도" 받고 영적인 문제들을 대적하는 것은 중요한데

말씀으로 자기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장거리 건강한 신앙"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정신병 상담을 받아야 하는 분들도 있으시다.
모든 증세(?)가 다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 새벽 이런저런 힘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새벽을 깨운다.

밤새도록 우리 모두를 지켜주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이 하루를 이겨내는 넉넉한 힘을 공급하여 주실 것을 믿는다!

 

에 스 겔 42 장

 

13 -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어제 아침에 온 문자가 기억난다.
교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밤새동안 후덜덜 떨려서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한다.

교회의 목회자의 약한 부분 때문에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목회자가 넘어(?)질 때 왜 사람들은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가?

그들이 있어야 하는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의 자리에서 벗어남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더 나가서는 배신감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비교인들이 교인들이 행하는 악한 일들에 대하여 더 큰 분노를 일으키는 이유라고도 하겠다.

그만큼 비교인들이 교인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내가 신학교 다닐 때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돈, 이성, 명예 이 세가지에 걸리지 않으면 목회를 잘 하는 것이다!"였다.

근데 이 세 가지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세 가지 걸림돌인 것 같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 1서 2장 16절)

 

믿음의 경주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끝까지 잘 완주해야하만 할 것이다.

내가 내 화장대 바로 옆에 두고 느을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말씀은
히브리서 13장 7절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여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이 말씀은 특별히 나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나는 "행실의 결말"이라는 말을 느을 상고하고자 한다.


"능력"도 아니고 지금까지 이룬 어떤 "성과"의 열매가 아니다.
행실의 결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
나도 그러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내가 설교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많은 곳에서 나를 설교하러 오라고 하니 아마 설교를 아주 못하는 설교자 같지는 않다.

 

내가 강사로 소개될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가?

많은 소개말이 있는데 "말씀대로 살아가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소개받을 때가 종종 있다.

나를 아는(?) 지인들이 나를 소개할 때 그렇게 말을 해 준다.

나는 그 인삿말이 정말 황송하지만
속으로 "아유.. 나 말씀대로 못사는데.."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이런 소개말을 계속 들으면서 잘 살아야겠구나" 이렇게는 생각한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쓴 책 "나는 이렇게 순종했다!"

"말씀대로 사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말씀의 순종은 순종이 익숙해질 때까지가 어렵습니다.
순종이 익숙해 지면 불순종이 힘들어집니다" 라는 말을 쓰기도했다.

 

그런데 이것이 꼭 나만(?) 할 수 있는 고백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벽기도 매일 다니시는 분에게 이제 교회 문 닫으니 새벽기도 나오지 마세요! 이러면

그 사람이 기뻐할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이미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익숙한 습관이 된 사람인 것이다.
그 시간 늦잠 자라고 하면 그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매일 전도하는 사람에게 전도하지 말고 어디 가서 술 먹자고 하면 그 사람 그거 기뻐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나보고 어디가서 하루종일 백화점 제일 비싼 명품코너에서

명품 가방 사는데 하루종일 시간 보내라고 하면 내가 기뻐하겠는가?
ㅎㅎㅎ
나 아마 그러라고 하면 가방에 적혀 있는 가격보면서..

키야 이 돈이면 아프리카 사람들 옥수수가루 몇포 더 사 줄 수 있지? 그거 계산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더 속이 편할 것이고 말이다.

 

이렇듯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말씀 순종이 말씀 불순종보다 더 익숙해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넘어짐 때문에 성도님들이 가슴 아파하는 소식을 접할 때는

이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언제인가 내가 택시 기사님 전도하는데

그 분이 일제시대 때 교회 처음 가서 예배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갔는데

예배 마치고 나오니 신발이 없어졌다고 그 이후로 다시는 교회를 안 나가셨다고 하신다.
그래서
택시 내리기 전 그 분에게 5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글을 썼다.


"기사님! 신발을 잃어 버리셨을지언정 천당 가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거 신발 값입니다!
교회를 대표해서 사죄드립니다"

 

나는 그 분을 천국에서 꼭 만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그 봉투를 건네 준 기억이 있다.

 

누군가 "목회자"라고 불리워 지는 사람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김 받는 자들의 넘어짐이 목회자인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할 것인가!!

 

오늘 에스겔서 42장에는 여호와께 가까이 있어야 하는 제사장들의 대한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를 가까이하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것이 바로 "거룩함"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이제는 만인의 제사장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우리 모든 믿는자들에게 구별되는 가장 큰 기대가 바로 "거룩"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거룩"은 곧 "구별됨"이라는 말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구별되었습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되었습니다.

올바른 언행으로 구별되는 것이 사실이겠으나
가장 큰 구별됨은 바로 "십자가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 거룩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 정의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 선행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나와 세상의 가장 큰 구별함이요, 가장 위대한 거룩입니다.

오늘도 "주님 은혜"안에 저를 맡겨 드립니다.

 

오늘은 예수님 십자가 못 박히신 후 무덤에 계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는 그 시간에 아무런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기다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내일은 부활절이니

무덤에서 살아나신 기적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껏 자랑하고 알리는 시간이 되겠지만

오늘 이 하루에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하나님을! 예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렇게 아무런 기적 없이.. 하나님의 침묵만이 있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 날이 지나면 우리 모두에게 부활이 있음 역시 기억하게 하옵소서!

 

저는 오늘도 만남 사역이 있습니다.
하루도 사역이 없는 날은 없으나 몸이 그렇게 피곤한 것도 아닙니다.

저녁에는 피곤해도 아침이면 새 힘을 얻습니다.

오늘도 저와 함께 모든 사역을 동행하여 주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