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차현진] [65] 은행원의 뚝심

colorprom 2022. 4. 6. 13:56

[차현진의 돈과 세상] [65] 은행원의 뚝심

 

입력 2022.04.06 00:00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는 풍운아 중 풍운아다.

사생아로 태어나 남의 집에서 자랐으며,

10대 초반에는 남에게 속아 미국에서 노예 생활까지 했다.

간신히 탈출한 다카하시는 일본으로 귀국해

당시 대장성 고문이던 영국인 알렉산더 샨드의 통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도와 일본은행법을 만들었다.

 

자기가 만든 법률에 따라 일본은행 지점장이 된 뒤 나중에 총재가 되었다.

나중에는 재무장관과 총리까지 올랐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도 비슷하다.

그는 카리브해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나 술집 점원으로 자랐다.

이후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헌법에 따라 초대 재무장관이 되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다.

다카하시가 총리가 되던 해 태어난 신병현

조선은행 직원이 되어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해방을 맞았다.

소련군을 피해 월남했다가 미국인을 도와 한국은행법을 만들었다.

금융통화위원회니 통화 신용 정책이니 하는 말은 그가 만든 말이다.

훗날 그는 자기가 만든 한은법에 따라 한은 총재가 되었다.

 

풍운아 다카하시는 뚝심이 대단했다.

군부 개혁을 위해 군벌과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바람에 쿠데타의 표적이 되었다.

 

신병현의 뚝심도 대단했다.

5·16 직후 신병현은 미국 백악관 앞에서 쿠데타 반대 시위를 벌였다.

1인 시위였고, 그 바람에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유신 시대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그 뒤 스태그플레이션과 싸우는 한은 총재가 되었다.

 

제5공화국 시절 물가 안정은 김재익 경제수석보다 신병현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3년 6개월 동안 경제부총리로서 인기 없는 정책을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그때 별명이 ‘곰바우’였다.

 

1999년 4월 4일 곰바우 신병현이 미국에서 타계했다.

고국의 외환 위기를 걱정하며 잠 못 이루던 끝이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뚝심이 필요하다.

새로운 한은 총재가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