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난 여기까지야’라는 한계 밖으로 나아가기

colorprom 2022. 3. 28. 12:03

[밀레니얼 톡]

‘난 여기까지야’라는 한계 밖으로 나아가기

 

입력 2022.03.28 03:00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떠오른다.

입학식 날 가장 먼저 일어나 책가방을 다시 한번 소중히 만져보고,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은 뒤

거의 뛰듯이 엄마 손을 잡은 채 학교로 향했다.

그 뒤로 매해 학년이 바뀌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을 거쳐 대학원에 입학할 때까지

이 설렘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3월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든다.

1월에 세웠던 새해 다짐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작심삼일’이 ‘작심삼월’이 될 때까지 방치한 나 자신을 다잡기에도 제격인 때다.

 

그러고 보면 나는 유독 3월에 무언가를 시작한 적이 많다.

캘리그래피, 스케치, 수채화, 색연필 드로잉, 기타, 피아노, 도예, 뜨개질, 영어 원서 읽기,

일본어 원서 읽기, 중국어 원서 읽기, 독서 모임, 영화 모임, 석사, 박사….

이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려 애써왔다.

공부의 사전적 정의가 “(이론·지식·기능 등을) 배우고 익히는 것”임을 감안할 때,

‘타임 푸어(time poor)’로 살면서도 배우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겠다.

언젠가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의 일기를 본 적이 있다.

포켓 사이즈 다이어리의 위클리 페이지 두 장,

그마저도 오른쪽 페이지를 일주일에 해당하는 일곱 칸으로 나누었는데,

거기에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나 혼자 산다’에서 개그우먼 장도연이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몰아 쓴 것처럼

한두 줄의 문장이 전부였다.

그건 어쩌면 ‘일기’보다는 ‘메모’라고 부르는 게 적절해 보였다.

장도연 개그우먼이 쓴 그것보다 훨씬 더 휘갈겨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작은 다이어리는 우주인 이소연에게는 아주 소중한 일기장이었다고 한다.

우주 비행에 있어 초과로 허락된 개인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자유 시간의 소중한 일부를 떼어내 그 좁은 다이어리의 칸을 급히 메울 때,

우주인 이소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에게 ‘공부’란 우주인 이소연에게 초과로 허락된 개인 물품인 다이어리 같은 것이다.

하루 중 여덟 시간, 마감 때는 초과 근무로 그 이상을 회사에 묶여 있는 나에게 있어

점심시간과 퇴근 후 시간을 쪼개어 하는 공부는,

어쩌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을 초과해버린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난 여기까지야, 하고 두른 한계의 선 밖에 존재하는 ‘배움’의 정체는

어쩌면 우주인 이소연에게 다이어리가 그랬듯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어떻게든 내 삶에 주어진 부분을 넘어서,

시간을 쥐어 짜내어서라도 꼭 해야만 할, 하고 싶은 그 무엇이니까.

 

자발적 공부는 그만큼 즐겁다.

내가 원해서 배우기에 원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즐겁지 않으면? 배우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생각이 잘 통하는 지인들과 원서 읽기를 시작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함께하는 이 모임에서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를 가르쳐주시는 현직 번역가 선생님이

본인의 공부 역사를 모아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라는 책을 최근 출간하셨다.

이 책의 표지와 카피를 고르는 설문조사에서 이런 문장이 눈에 띄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에도 당신이 공부를 계속하면 좋겠습니다.”

 

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만의 속도다.

서두를 필요도,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나만의 속도로, 오직 ‘나’를 위한, 나를 성장시키는 공부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