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민주주의 참칭한 반쪽 정부를 마감하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 구호는 ‘국민이 불러낸 후보’였다.
맞는 말이다.
그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국민 과반이 원하는 정권 교체의 열망을 이뤄냈다.
그 둘은 각자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국민에게 불려 나온 공통점이 있다.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시작했고, 국민이 원해서 단일화도 했다.
이게 민주주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만약 윤석열 당선인이 얼굴이 두꺼웠다면 진짜 민주 정부가 탄생했다고 요란을 떨었을 수도 있다.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두려워한 국민이 많다.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가꿔온 대한민국이 송두리째 날아갈까 봐서 그렇다.
러시아 폭탄을 맞은 우크라이나 도시처럼, 전쟁의 포화를 맞아야만 나라가 부서지는 게 아니다.
나라를 떠받드는 헌법 정신에 균열이 생기면 국가 정체성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고,
정체성이 바뀌면 더 이상 같은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박정희면 어떻고, 김대중이면 어떻습니까”라고 목청을 높이던
이재명 후보가 만들고자 한 나라가 무엇이었는지,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는 “제4기 민주 정부를 열겠다”고 했고, 나는 그 ‘4기 민주 정부’가 탄생할까 두려웠다.
하기야 이재명 후보가 무슨 죄가 있으랴.
여당 후보였던 그의 역사적 사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잇는 것이고,
문 대통령은 그동안 대한민국 역사의 절반을 철저하게 외면해온 희한한 인물 아니었나.
문 대통령은 그의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도 김대중 정부를 ‘첫 민주 정부’라고 못 박았다.
그러니까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가 2기, 자신이 3기 민주 정부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자연히 4기가 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상한 셈법에 이튿날 YS센터의 김덕룡 이사장은
“대통령의 역사 인식에 대한 실망과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국민 내부를 갈라치기하려는 의도”라며 즉각 우려를 표시했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의 송재윤 교수는 신문 칼럼에서
“최초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를 통해 1948년 공식 수립된
이승만 정부가 1기 민주 정부”라고 정정해주었다.
2007년 무렵, 손학규 당시 대통령 후보는 “김영삼 문민 정부가 민주 정부 1기”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대통령 직선제를 치른 1987년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원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4기는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74년 역사를 통틀어 민주 정부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뿐이고,
나머지는 ‘반민주 정부’였다는 것 아닌가.
거짓에 침묵하면 기정사실이 된다.
사실(史實)에도 어긋나고 국민적 울림도 없는 허튼 민주 정부 원조 논쟁을 가볍게 지나쳤다간
훗날 역사가 어찌 기술할지 모를 일이다.
지금이야 전직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들과 그들을 뽑은 유권자들이 살아있으니
헛소리를 해도 풉 하고 지나치지만,
혹시 아는가. 백 년이 지난 후 1기 민주 정부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교과서에 싣고 가르치기 시작하면
후세는 그걸 믿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을 세우고 발전시킨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희대의 악마로 묘사한 조악하고 편향된 영상물 ‘백년전쟁’에 대해 2019년 대법원은
“기존에 입론된 역사적 사실과 전제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 정도에 그쳐…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고 파기환송 의견을 냈고,
그 대법관 7명 중 6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으며,
그중 한 명이
최초의 여성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거 부실 관리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노정희 위원장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데는 백 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은 조급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선거에 패한 후
“평당원으로 돌아가 5년 뒤로 미뤄진 제4기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수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도 그들을 민주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데,
심지어 ‘민주’를 상실해서 실망한 민주당원들이 줄을 이어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는데,
그들은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분리주의자처럼 5년 후의 제4기 민주 정부를 도모하고 있다.
그들이 흰고래처럼 쫓는 민주 정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다수의 염치(횡포가 아니라)와 소수의 협력(불복이 아니라)으로 이루어지는
인류 최고 발명품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의 이름으로 반대파를 처벌하지 않는다.
직접선거로 당선된 민주주의 지도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절반에 등 돌리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특정 세력이 전유물로 누리며 그 위에 올라타 이권을 행사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법치다.
자기편이든 남의 편이든 잘못(적폐)은 법 앞에서 평등하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자칭 ‘제3기 민주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는 위의 조건을 모두 위배했다.
게다가 매너도 없다.
한 달 남짓 남은 정권이 각계 요소에서 몇 년 동안 중책을 수행해야 할 자리에 인사권을 행사하거나,
명백하게 정치적인 이유로 얻은 자리를 ‘정치적 중립’ 운운하며 버티는 건 신사답지 못하고 쩨쩨하다.
당명에 ‘민주’를 쓰는 건 용납할 수 있다. 비전이 담긴 레토릭마저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마치 자신들이 이 땅 민주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양 참칭(僭稱)하는 건 그만했으면 한다.
그게 다름 아닌 거짓 선동이며 역사 왜곡이기 때문이다.
5월에 출범하는 정부는 국민이 불러내고 키워서 당선시킨 ‘꽉 찬 민주 정부’다.
윤석열 정부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민주 정부의 사명감을 갖고
대한민국호(號)에 자유와 민주라는 평형수를 가득 채우고
흔들림 없이 미래라는 바다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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