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짓밟힌 ‘올림픽 휴전’의 교훈
2022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두 달 앞둔 작년 12월 2일 제76차 유엔총회에서
‘올림픽 휴전안’을 결의했다.
올림픽 개막 일주일 전부터 패럴림픽 폐막 일주일 뒤까지의 50여 일을
휴전 기간으로 선포하고 회원국들에게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지구촌 평화의 축제를 맞아 이 기간만이라도
인류가 서로를 향해 겨누던 총부리를 거두자는 호소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때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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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효성보다는 선언적 의미가 큰 이 결의안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럼에도 유엔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발표될 때마다
세계 각국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연대의 의미와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이 결의안을 대놓고 무시한 나라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러시아다.
올림픽 개막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친서방 노선을 꾀하던 우크라이나를 속국처럼 두기 위해
군사적 위협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최신식 미사일을 훈련에 동원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급기야는 러시아 추종 반군 세력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에
‘평화 유지’라는 명목으로 직접 군대를 보내 무력 점령에 나섰다.
모두 올림픽 휴전 기간 벌어진 일이다.
도핑으로 올림픽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더니
장외(場外)에선 우크라이나 사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며
평화의 축제임을 무색하게 했다.
러시아의 ‘올림픽 도발’은 이전에도 있었다.
8년 전 자국에서 개최한 소치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병력을 보내 3주 만에 자국 땅으로 강제 병합했다.
장애인들의 겨울 스포츠 제전인 소치 패럴림픽 기간 벌어진 일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아예 개막식이 열리던 날에
반(反)러시아 성향이 강한 구소련권 나라 조지아를 무력으로 침공해 전쟁을 벌였고
나흘 만에 굴복시켰다.
러시아의 거침없는 도발 속에 휴지 조각이 돼버린 올림픽 휴전안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제 정치는 결국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는 것,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소련 붕괴로 독립국이 된 우크라이나가
30년간 분열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키워
러시아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됐다면,
그 힘의 균형 덕에 ‘올림픽 평화’는 유지됐을 것이다.
적대 세력과 열강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도
2018년 평창 올림픽을 통해
긴박하게 돌아가던 한반도 정세를 평화 무드로 급변경시키려다
‘쇼’로 끝난 씁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평화는 남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단발성 깜짝 이벤트를 통해서 이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힘을 갖춰야만 쟁취할 수 있다.
올림픽 휴전 약속을 걷어차버린 러시아의 군사 행동 명분은 ‘평화 유지’였다.
이 역설적 상황은, 평화의 필수 조건은 바로 ‘힘’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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