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진정으로 사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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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과(謝過)는 넘쳐나는데
왜 여전히 부족하게 보이거나 도리어 화가 나는 걸까.
‘익스플레인(explained): 세계를 해설하다’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익스플레인’은 제목처럼 성형 수술과 전염병, K팝의 인기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20분 안팎으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세 번째 시즌의 프로그램 제목이 ‘사과(Apologies)’다.
다큐는 성의 없고 형식적인 사과 때문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격이 되고 말았던 사례들을 언급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부터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상대 여가수 가슴 노출 사건까지 사례는 다양하다.
그 뒤 진정한 사과의 필수 요건들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사과 당사자의 뉘우침을 드러내고 피해자의 고통을 인정한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거나 책임감을 표현하고,
상황을 바로잡거나 변화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마지막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실생활이든 공개 석상이든 사과는 넘치지만,
정작 이런 요건들을 충족하는 사과는 드물다는 것이 다큐의 설명이다.
올해 대선 정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사과 경쟁’이었다.
여야 후보는 물론, 후보 배우자와 캠프까지 지지율 하락의 조짐이 보일 적마다
어김없이 사과를 쏟아냈다.
선거철만 되면 뻣뻣했던 고개가
폴더폰(접이식 휴대전화)처럼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필수 요건을 충족시켰던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돌아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역설적이지만 사과(apology)라는 영어 단어에는 회피의 심리가 숨어 있다.
‘아포(apo)’가 들어간 단어에 떨어지고 벗어난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계시(啓示·apocalypse)’는 가리고 있던 덮개를 들춰서 벗겨낸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정점(頂點·apogee)’은 높거나 멀리 떨어진 지점을 뜻한다.
여기에 말이나 학문이라는 ‘로지(logy)’를 붙인 말이 사과다.
그야말로 ‘회피의 말’이자 ‘모면의 기술’이다.
이처럼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하루빨리 달아나고 싶은 것이야말로
사과의 근본 속성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돈이든 사과든 넘치면 결국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마구잡이로 돈이 풀리면 물가가 뛰고 자산 가격이 폭등해서
극심한 민생고(民生苦)로 귀결된다.
코로나 이후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이다.
사과 역시 다르지 않다.
자격 요건에 미달하는 사과가 넘칠수록 관용의 심리는 줄어들고
오히려 분노만 솟구치는 부작용을 낳는다.
올해 대선 정국의 특징은 사과의 ‘가치 절하’ 현상이 아니었을까.
치솟는 물가는 금리 인상으로 잡는다지만,
과연 땅에 떨어진 사과의 값어치는 무엇으로 바로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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