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백영옥의 말과 글] [241] 외로움의 풍경

colorprom 2022. 2. 26. 13:56

[백영옥의 말과 글] [241] 외로움의 풍경

 

입력 2022.02.26 00:00
 
 

‘임대 문의’가 잔뜩 붙은 상가에도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는 상점이 있다.

다양한 펫숍과 반려동물의 간식이나 장난감, 옷 등을 파는 상점들이다.

친구에게 고양이 스케일링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게 5년 전인데,

한 동물 유튜브 채널에서 강아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카시트를 봤다.

백화점 한 팝업 스토어에서 유명 디자이너와 컬래버한

80만원대 강아지 명품 패딩도 봤으니 말을 말자.

요즘은 발랄한 견생과 묘생을 위한 24시간 무인 점포도 늘고 있다.

 

이제 인권뿐만 아니라 동물권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멸종 동물과 지구 기후 위기’에 대한 영어 토론 수업에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들었다.

약대에 다니는 한 친구가 학교에서 2011년에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인한 동물들의 피해 상황과 관련된

동물권 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보고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부터

일부 동물병원에서는

원인 미상의 급성 호흡곤란 반려동물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사람에 비해 몸집이 작고 약하니 그 피해가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반려동물을 ‘우리 집 막내’라 부를 정도로 아끼는 집이 늘고 있다.

하지만 펫숍의 조명등 아래 진열되어 있는 아기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귀엽지만 한없이 슬픈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관련 사업을 보면서

개 농장이나 유기견 안락사 같은 문제들도 늘 마음을 짓누른다.

 

작업실이 있는 오피스텔의 복도를 걸을 때,

되도록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를 퇴근하는 보호자로 오해해 짖는 강아지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질문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의 반려견은 어떻게 그렇게 당신을 빨리 반겨줄 수 있나?

정답은 반려견이 온종일 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어떤 존재는 더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도 한다.

 

서럽게도 서로의 외로움에 기대어 살아가는 21세기적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