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사진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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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분위기를 한껏 북돋우는 것은 전국 방방곡곡을 가득 메운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와 현수막이다.
선거 홍보물의 하이라이트는 얼굴이다.
기호 숫자도 보이고 소속 당명도 보이고 핵심 구호도 보이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얼굴이다.
‘사진이 선거의 반(半)’이라는 정치 전문 사진기자들의 이야기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그런데 막상 사진에 담긴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며 갖게 되는 느낌은
묘한 낯섦과 어색함이다.
특히 유력 후보자들의 경우 지금까지 국민 눈에 익은 모습과 사뭇 달라져 있다.
‘흑발(黑髮) 염색’ ‘눈썹 문신’ ‘포마드 스타일’
‘숏컷 머리’에 시쳇말로 ‘떡칠’까지 한 모습은
평소 그들의 얼굴에 대한 기억을 일시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야릇한 거리감이나 이물감 탓에 기분 같아선 ‘같은 분 맞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아니면 ‘이것 사진 맞습니까?”라고 따지고 싶다.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낸다’는 사전적 의미의 ‘사진(寫眞)’ 말이다.
그러면서 닮을 사(似), 참 진(眞)을 합친
‘사진’(似眞)이라는 조어(造語)가 떠오르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서 얼굴만큼 신분 증명용으로 확실한 것은 없다.
얼굴은 개인의 역사이자 내면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키케로가 말했듯 “모든 것은 얼굴에 있다.”
옛날에는 초상화를 그렸고 오늘날에는 사진을 찍을 뿐이다.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대니얼 맥닐(Daniel MCNeill)은
사람의 얼굴을 ‘문명의 첫 단계’로 생각한다.
세상에는 얼굴 없는 단세포 생명체가 무수히 많다.
입이나 눈이 얼굴의 전부인 하등동물도 허다하다.
이에 비해 인간에게 얼굴이란 다른 신체로부터 독립된 육신의 중심이다.
더욱이 사람의 얼굴은 오감(五感) 가운데 네 개를 차지하는 데다가
동물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털이 없다.
이로써 얼굴은 내가 남의 생각을 알아채고 상대가 내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이자 본무대가 된다.
이목구비의 배열은 모든 인간이 대동소이하지만 쌍둥이조차 똑같지는 않다.
얼굴이 곧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기억력이 얼굴에 대해 특히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다.
갓난아이는 다른 어떤 형상보다 얼굴 패턴을 좋아한다고 한다.
“인간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세상에 나온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얼굴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람들 사이에 생각과 감정, 정보를 주고받는 데 있는 셈이라,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인물 사진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현상은
하등 놀랍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사진 매체에 친숙하고 예민한 시대다.
전 국민 손에 폰카메라가 들려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퍼 날라져 순간적으로 집단반응을 유발하는 것이
사진의 위력이다.
글이나 말을 통한 메시지 대신 사진에 의한 이미지가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는 시대가 싫든 좋든 현실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인물 사진의 진정성과 진실성이다.
결코 민낯이나 ‘생얼’만 보여달라는 주문이 아니다.
화장이나 분장, 심지어 성형조차도
40대 이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그 나름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때 빼고 광 내고 힘주는’ 일도 유분수(有分數)다.
지금 우리는 연예인 인기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공인(公人) 중의 공인, 대통령을 뽑는 중이다.
비록 ‘옳고 그름’이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 해도
‘싫고 좋음’이 그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주권자 국민은 후보자들의 외모 연출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인품과 자질에 관련된 그들의 진면목을 사실대로 전해줄
보다 진솔하고 정직한 얼굴 사진을 대하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그러한 바람도 참정권의 일부다.
선거 벽보에서는 그렇게 유능해 보이던, 그렇게 정의롭게 보이던,
그렇게 양심적으로 보이던, 그렇게 포용적으로 보이던 선남선녀가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모습에
너무나 자주 속아온 우리들이다.
이러한 이미지 정치의 웃지 못할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게 만드는
선거 관리상의 제도나 장치는 혹시 없을까.
그런 게 부재하거나 불가하다면
당장은 우리 스스로 대선판의 ‘사진발 정치’에 속지 않는
눈 밝은 유권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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