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5000원 냉면 포기한 사장님
서울 청량리시장에서 12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냉면집 ‘다미옥’ 주인 이충현(65)씨는
지난 6년간 냉면 한 그릇을 5000원에 팔았다.
이씨에게 ‘5000원 냉면’은 맛있는 냉면 싸게 판다는 자부심이고 큰 ‘타이틀’이었다.
“면이 쫄깃하고, 육수 맛 좋아서 5000원 주고 입이 호사한다”는 손님들이
가게를 채워줬다.
그런데 작년 11월 이씨는 자랑거리를 잃어버렸다. 냉면 값을 6000원으로 올렸다.
아내와 두 아들까지 가족들이 모두 달려들어 일하는데 남는 게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냉면 값 올린 게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이씨는 연신
“재료 값이 뛰는데 더 버틸 재주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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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인 2019년 여름,
서울 시내에서 5000원 내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가성비 맛집’을 취재했다.
당시 들렀던 가게에 연락을 돌려보니 모두가 ‘죽을 맛’이라고 했다.
단돈 2000원에 ‘최저가 자장면’을 팔아
종로 일대 상인들과 어르신들 사이 소문난 동묘 ‘남도식당’도
최근 자장면 가격을 500원 올렸다.
그 뒤로 하루 500~700그릇 팔리던 자장면이 300그릇 밑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주인 장인종(62)씨는
“없는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아껴 어떻게든 싸게 먹으려 한다.
가격 올리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36년 된 을지로 ‘동경우동’도 2018년부터 4000원에 팔던 우동 가격을
지난 설 이후 500원 올렸다. 주인 김석주(43)씨는
“‘비싸게 팔지 말라’던 아버지 뜻에 따라 200~300원씩만 올렸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넉 달째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어섰다.
10년간 없던 일이다.
물가 조사 품목 468개 가운데 339개가 올랐다.
식자재 값이 뛰면서 외식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5% 넘게 올랐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점심 값이 무섭다”는 말이 나온다지만,
가격 올려받는 식당 주인들도 괴롭다.
코로나로 줄어든 손님들이 아예 발걸음을 돌릴까 봐서다.
단골들이야 발길을 끊진 않겠지만
속으로는 “동네 장사하면서 가격 올린다”고 못마땅해하지 않을까
걱정이고 무섭다.
신촌의 한 쌈밥집 사장님은
“휴대폰 앱으로 농산물 경매 단가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요샌 재료 값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새벽 시장 끝나고 떨이 채소를 골라온다”
고 했다.
정부는 오늘부터 매주
자장면, 갈비탕 등 12개 외식 품목의 가맹점별 가격과 상승률을 발표하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격 인상 억제를 위해 시장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물가를 잡아야지, 식당 주인들 멱살을 잡으려고 한다.
“저 자장면집 가격 올렸다”고 조리돌림을 하면 가격 못 올리지 싶은 모양이다.
박리다매 서민 식당들 중에 가격 인상 달가워하는 주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내놓은 물가 대책이란 게 번짓수가 한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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