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책]폴 오스터, ‘달의 궁전’.

colorprom 2021. 12. 15. 14:56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1] 달님이란 이름은 하늘의 달에게 돌려주고

 

입력 2021.12.15 03:00
 
폴 오스터, ‘달의 궁전’.

 

두 건물 사이로 난 틈새가 ‘달의 궁전’이라는 글자가 적힌 분홍색과 파란색의

선명한 네온사인 불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중국 음식점의 간판인 것을 알았지만 내게 느닷없이 달려든 그 글자들이

현실적인 판단과 생각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그것은 마법의 글자들이었다.

그 글자들이 하늘에서 바로 내려온 메시지인 것처럼 어둠 속에 걸려 있었다.

-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에서

 

 

달(moon)이라 불렸던 권력자와 함께하는 마지막 해, 2021년도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일자리 확대, 권력 개혁, 부정부패 척결, 한미 동맹과 자주 국방으로 안보 강화,

청년 고용 확대, 성 평등, 노인 복지, 자녀 키우기 좋은 환경,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사업하기 좋은 사회 그리고

청와대를 컨트롤타워로 하는 안전하고 건강한 나라.

 

현 정권의 10대 공약이었다.

 

인류가 달에 처음 착륙했던 해,

가난한 대학생 포그는 세 들어 살게 된 원룸 아파트 창밖으로

‘달의 궁전’이란 중국 음식점의 네온사인을 보며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동안 학비를 보내주던 유일한 혈육, 삼촌을 잃고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빈곤을 경험한 뒤 노숙자가 된다.

극적으로 발견되어 아사 위기를 모면할 때까지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았다.

 

다시 자기 방을 갖게 되었을 때 포그는 달빛이 비추는 밤을 그린 그림을 보게 된다.

그에게 달은 남이 이룩한 성공,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환상,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림 속 낭만이었을 뿐, 실체가 아니었다.

 

그는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지만

황량한 어둠 속에서 둥글고 밝은 진짜 보름달을 두려움 없이 마주한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비로소 가슴에 품게 된 것이다.

 

이번 주에는 어떤 소설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며 책장을 뒤지다

‘달의 궁전’이란 제목 앞에서 멈췄다.

달님이라 불리던 정권의 수장이 만든 세상은 얼마나 밝아졌을까.

헛된 마법의 주문 같았던 달빛의 모래성은 아니었는지.

 

너무 늦은 게 아니라면 달의 이름은 하늘의 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사람은 사람의 이름으로, 사람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