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책]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로살레스, '대통령 각하 (El Señor Presidente)'

colorprom 2020. 12. 16. 15:34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90] 영도자님 새집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0.12.16 03:00

 

과테말라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 언론인, 외교관인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로살레스가 쓴 '대통령 각하 (El Señor Presidente)' 표지

 

“우리가 지금 모시고 있는 분은 가장 유능한 정치가이며

가장 위대하고 슬기로운 자유주의자, 사상가, 그리고 민주주의의 신봉자이십니다.

영도자로 다른 사람을 상상하는 것은 국가의 운명을 위기에 몰아넣는 일입니다.

만약 감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위험천만한 정신병자로 취급받아야 할 것이며

법이 정한 대로 국가에 대한 반역자로 심판받아야 할 것입니다.”

-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대통령 각하’ 중에서

 

부동산을 잡겠다고 큰소리쳤던 정권이

치솟는 집값은 나 몰라라,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공공주택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퇴임 후 살 곳이라며 1000평 가까운 땅을 매입한 사람이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는 전용면적 13평 임대 아파트가 아늑하다,

아이들 키우며 사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흡족해했다.

수행한 국토부 장관은 중산층까지 임대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196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과테말라의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소설 ‘대통령 각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와 그의 비위를 맞추며 부와 권력을 누리는 고위 관리들,

그 밑에서 신음하다 죽어가는 국민의 처참한 실태를 그린다.

 

권력자를 찬양하는 공지문이 발표되면 대중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정신병자나 반역자로 몰려 죽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시민들은 희생되고

최측근이던 주인공도 권력자의 눈 밖에 나자 비참하게 버려지고 참혹하게 죽어간다.

 

지난가을, 북한김정은

수해 지역에 새로 지은 주택단지를 돌아보며 대만족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검게 그을리고 비쩍 마른 주민들은 한복까지 입고 나와 마을 잔치를 벌였고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님, 새집을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내 집 마련의 꿈을 비웃듯 임대주택을 권하며 흐뭇해하는 정책 수장들의 모습은

‘사회주의 마을에 인민의 기쁨과 행복의 웃음이 끝없이 넘쳐난다’북한 방송과 묘하게 겹친다.

평생 월세를 내야 하는데도

‘이렇게 좋은 집을 임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울먹이는 입주자의 연출된 찬양을

뉴스에서 곧 보게 되는 건 아닐까, 쓸데없이 걱정만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