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스토리] [341] 천국으로 단테를 인도하는 베아트리체
입력 2020.08.31 23:42
베네치아의 세밀화가, 단테의 신곡 필사본(Cod. It. IX. 276) 중에서 천국편 53쪽,
1350~1390년경, 양피지에 채색, 페이지 크기 43x28cm, 베네치아 마르차나 국립도서관 소장
단테가 천국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단테는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는 아홉 단계의 지옥을 지나며
영원한 죄인들의 끔찍한 고통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기나긴 통로를 따라 오래도록 달린 다음, 연옥에 도달하여
이번에는 인간의 죄를 하나씩 덜어낼 수 있는 아홉 단계 정화의 산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불의 담을 넘었다.
그렇게 도달한 낙원에서 그가 일평생 사랑했던 그녀,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이다.
단테의 장편 서사시 ‘신곡’은 1321년 발표 이래 특히 베네치아에서 큰 인기를 누려,
14세기 후반에 베네치아에서 채식필사본이 다수 제작됐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유달리 큰 판형인데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각 33곡 첫 문장, 첫 글자가 모두 크고 화려하게 장식됐고,
170점에 달하는 삽화 중 일부가 두 페이지에 걸쳐 펼쳐지는 등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구성을 자랑한다.
이 그림은 그중 작은 편으로 천국으로 단테를 인도하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 입장에서 천국은 지옥에 비하면 지루하다.
기상천외한 고문과 사연이 기구한 죄인들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깊고 푸른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평온한 곳일 뿐이니 말이다.
성녀가 된 베아트리체는 태양을 가리키며 단테를 돌아보는데,
단테는 차마 성큼 다가서지 못하고 정말 자기를 보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표정이다.
앞으로 내민 그녀의 손을 잡고 싶으면서도 애써 참아보는 그의 왼손이 애처롭다.
단테에게 천국이란 베아트리체 하나만으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사실 단테는 일평생 베아트리체를 스치듯 두 번 본 게 전부다.
둘이 제대로 사귀어 보기라도 했으면 여기가 여전히 천국일지는 조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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