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백영옥의 말과 글] [158] 비움과 채움

colorprom 2020. 7. 18. 14:37

[백영옥의 말과 글] [158] 비움과 채움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0.07.18 03:12

백영옥 소설가

 

코로나 이후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은

'이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서조차

'경력을 쌓으며 힘들게 축적한 경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면

참 혼란스럽다.

 

나 또한 출판사 마케팅 회의에서

코로나 때문에 8월에 나올 신작의 북 콘서트를 취소하기로 했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채로 진행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감염 우려 때문에 포기한 것이다.

코로나 이후 취소된 강연이나 공연이 많은 사람의 생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

취소만이 능사는 아니라, 다들 대안 찾기에 분주하다.

유튜브를 통한 라이브 방송이나, '줌' 같은 화상 앱을 이용한 소통 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얼마 전 만난 전문가에게 바이러스 창궐 주기는 짧아질 것이고,

백신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것이 '디폴트' 값이 된 세상이 온다는 말도 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생활 백신이 일상화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러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막막해진 사람들에게 와 닿는 키워드가 뭘까.

김미경의 책 '리부트'에서

코로나 이후 자기 계발의 핵심이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가 될 것이란 말을 발견했다.

이미 지닌 능력에 '플러스'하는 것으로는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는 것,

쓸모가 다한 능력을 버리는 능력이 역설적으로 자산이 될 것이란 말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를 복원하는 방법은 일단 리셋하는 것이다.

이때 프로그램이 묻는다.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시 겠습니까?

'아니요'라고 누른 채 컴퓨터의 초기화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이렇듯 변화의 핵심에는 기존 것을 버리는 능력이 있다.

 

오래전, 주역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가리라.

 

하지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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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8/20200718000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