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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워라밸'

colorprom 2020. 7. 6. 14:48

[밀레니얼 톡] 조금 다른 '워라밸'

 

조선일보

 

  • 김서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입력 2020.07.06 03:10

김서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말이 화두가 된 지 꽤 됐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모토가 되는가 하면,

누군가에겐 '요즘 애들은 달라'라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매 순간을 목표를 위해 질주하듯 보냈다.

학생 때는 학업에 집중하는 게 중요했고,

변호사가 된 뒤로는 담당한 사건에 몰입해 업무 완성도를 높여가는 일이 즐거웠다.

더 많이 배우고 빠르게 성장하는 게 보람이었다.

어렵고 복잡한 업무를 척척 해결해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언젠가 그들처럼 능숙하게 성장한 자신을 상상하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로펌 변호사로 일한 지 3년 차.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만 일하는 삶이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게 느껴졌다.

과중한 업무와 단조로운 생활 패턴에, 업무는 배움의 기회보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사무실 책상 한쪽을 가득 채운 영양제와 몸에 좋다는 음식에 의지하던 체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일엔 처진 체력을 보충한다는 핑계로 종일 '시체놀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이불 속에서 보낸 주말은 유난히 처량했다.

이대로라면 성장은커녕 이 자리에서 '존버(끝까지 버틴다)'조차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열심히 일한 나를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솟았다.

 

곧장 회사 근처 피트니스에 등록했다.

그날부터 저녁 시간이 되면 모든 업무를 올스톱하고 곧장 피트니스로 향한다.

전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는 아니다.

오히려 업무를 마치지 못해 불편한 마음을 누르며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챙기게 된 건

하루 1시간 남짓 되는 그 짧은 시간이 일상에 가져온 변화가 컸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신경을 끄고 오로지 내 호흡과 자세에만 집중하며 운동하는 과정에서

종일 이메일과 전화로 복잡해져 있던 머리를 차분히 식힐 수 있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고 힘이 들어도 '5분만 더 뛰자, 한 세트만 더 해보자'고 다독이는 연습을 하면서는

끈기 있게 매달리는 정신력이 길러지는 듯했다.

그뿐 아니다.

걸음마를 막 뗀 직장인이 그렇듯,

아직 많은 게 낯설고 어렵고, 때때로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불안해질 때가 많지만,

러닝머신 위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빨리 뛰었을 때 혹은 어제는 못 들었던 무게를 들게 됐을 때,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됐다는 확신에서 오는 뿌듯함이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잔뜩 지쳐 있는 상태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운동을 다녀오면,

오히려 둔해져 있던 머리에 다시금 불이 들어온다.

물론 운동을 마치고 곧바로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사무실로 복귀하여 업무를 마무리한다.

운동 때문에 평소보다 한두 시간 더 늦게 회사를 나서게 될 때도 많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확실히 전과는 다르다.

'힘들다, 빨리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 대신

'오늘 하루도 균형 있게 잘~ 보냈다'는 산뜻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목표와 이상이 없는 삶은 허망하다고 하지만, 우리 인생은 목표와 이상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다.

무언가를 꿈꾸며 계속 전진하고 싶다면

먼저 '오늘 하루를 지탱할 수 있는 나'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순히 일을 덜 하고 더 많이 놀겠다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삶 속에서 '나'를 보살피고 스스로에게 작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것.

나에게 워라밸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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