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체육계 폭력

colorprom 2020. 7. 6. 14:08

 

[태평로] 우리가 '그 사람들'일 수 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06 03:16

 

스물둘 삶 마감한 故 최숙현, 체육계 뿌리박힌 폭행의 희생자
그 폭력에 눈·귀·입 닫은 사람들도 비극의 공범이다

강호철 스포츠부장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축구를 너무 좋아한다.

점심시간 때 공기놀이, 줄넘기하는 것보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공 차는 걸 더 즐긴다.

장래 희망 1순위는 '여자축구 국가대표'다.

더 어릴 적 꿈이었던 우주 과학자나 우주 비행사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축구 대회를 기점으로 후순위로 밀려났다.

엄마는 딸이 축구 선수란 말만 꺼내면 이내 표정이 굳어진다.

운동선수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또 위험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인 최숙현 선수가

결국 폭행에 시달리다 생을 스스로 마감한 사건이 터진 다음,

아빠는 엄마에게 '애가 그토록 원하는데, 후회하지 않도록 테스트라도 받아보자'란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솔직히 그럴 마음도 이젠 쏙 사라져버렸다.

아빠는 딸과 같은 나이 때 야구 선수를 잠깐이나마 꿈꿨다.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야구부를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 1차 테스트를 통과했다.

하지만 곧바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뒤늦게 친구들이 야구부에 입단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당시 부러움은 얼마 가지 않았다. 몇 개월 안 돼 그 친구들이 운동을 그만뒀다는 얘기가 들렸다.

매일 반복되는 지도자의 체벌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차라리 길 가다 차에 치이든, 강도 칼에 찔렸으면 좋겠다"며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해

훈련일지와 일기장에 고통의 순간들을 남겼던 최숙현 선수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어머니에게 '그 사람들 죄를 밝혀달라'는 메시지를 유언처럼 전했다.

먼지 나도록 때리다가 콩비지찌개 안주 삼아 와인 홀짝거리던 무면허 '양아치' 팀 닥터,

제자가 맞는 그 현장을 함께하면서도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던 감독이나 동료들만 '그 사람들'일까.

같은 식구끼리 살짝 눈감아주고 피해자만 바보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던 동종업계 동료와 지도자들,

해당 감독의 '괜찮다'는 문자메시지 하나에

(성)폭력 발생 신고 시 이행해야 할 매뉴얼을 휴지 조각 취급하다시피 했던 협회,

신고를 받고도 형식과 절차만 밟다가 골든 타임을 날려버린 관계기관들,

일이 터질 때마다 앵무새처럼 비슷한 대책만 되풀이하는 정부와 체육회는 떳떳할 수 있을까.

언론 역시 책임이 없을까 자문(自問)해보니 낯이 뜨거워진다.

아빠의 소꿉친구들이 지도자 주먹과 몽둥이세례에 일찌감치 야구 선수 꿈을 접고 난 지

45년이나 지났는데, 딸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묵직한 주먹과 매운 발, 그리고 독기 서린 욕설이

'대(代)'를 이어간다.

오히려 마성(魔性)의 흉포함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일상화된 스포츠 폭력은 '때려야 운동 잘한다'는 현장 지도자들의 그릇된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분명 그들도 현역 시절 맞으면서 고통과 분노를 느꼈을 텐데,

막상 지도자가 되어선 아픈 과거는 말끔히 잊어버리고

'라떼(나 때는 말이지)'를 앞세워 주먹과 폭언을 일삼는다.

정말 맞아서 선수들의 기량이 올라갈까.

 

아픈 기억은 나중에 웃고 넘길 추억이 될 값어치도 없다.

선수 미래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지도자가 쥐었기 때문인지

피해자 부모조차 눈치 보면서 대들지 못하고, 괜한 불이익을 당할까 주위에서도 모른 척한다.

선수 건강보다 성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소속팀도 폭력 행위를 슬그머니 방치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폭력은 지도자와 선수,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만성 악성 종양으로 자리 잡는다.

체육계 폭력을 100% 예방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갖춰져도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잘못된 병폐가 내 일이 아니면 무조건 눈과 입과 귀를 닫아버리는

우리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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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K스포츠의 검은 그림자, 폭력

 

조선일보

 

 

 

입력 2020.07.04 03:18

 

2002 월드컵에서 활약한 이영표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진출해서 힘겨웠던 고비를 이겨낸 비결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고비 때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시궁창에서 짓밟혀보기도 했는데 이까짓 거야 양반이지' 하면서 이겨냈다"고 했다.

 

그 시절 대표팀에는 어린 시절부터 안 맞아본 선수가 한 명도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강압적인 훈련과 체벌을 견뎌낸 선수들이 한국 스포츠를 이끌었다.

 

프로야구의 신바람 응원,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춘 여자골프 등

한국 스포츠의 외양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쪽 발은 시궁창에 빠져있다.

 

▶한국 영화 '4등'은 체벌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국 스포츠의 심리를 묘사한다.

번번이 4등에 그치는 초등학생 수영 선수에게 코치가 가차 없이 매를 든다.

아들의 멍 자국에 화가 난 아버지가 '선수를 코치가 때리느냐'고 화를 낸다.

오히려 아들이 "제가 잘 못해서 맞은 것"이라고 한다.

코치도 '다 너를 위해서 때리는 것'이라고 한다.

'맞아야 메달 딴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곳에서 폭력이 일상화된다.

 

 

▶2년 전 일본 체조계도 선수 폭행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다.

열다섯 국가대표 미야카와 사에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코치 하야미 유토는

"나도 어린 시절에 맞으며 운동했기 때문에 선수를 때려서라도 잘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변했다.

 

맞고 자란 선수가 코치가 돼 선수를 때리는 폭력의 대물림한국 스포츠에 만연해 있다.

쇼트트랙 심석희를 폭행해 실형을 받은 조재범 코치가 대표적이다.

 

▶폭행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최숙현 기사에

"살아서 복수를 하지 그랬느냐"는 안타까운 댓글이 쏟아진다.

선수들은 학교 진학과 취업에 결정권을 지닌 지도자 밑에서 '절대적인 갑을 관계'로 살아간다.

평생 찍힐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체육회와 해당 협회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지인들은 오열했다.

 

이들에게 스포츠계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곳이다.

 

▶의사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는 인사가 '팀닥터'라고 불리며 전지훈련에 동행해

선수들 체벌까지 했다.

대한스포츠의학회

"비자격자를 팀닥터로 불러 과도한 권위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성명까지 냈다.

 

스포츠 인권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 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1년이 머다하고 바뀐다.

 

전문성이 없는 곳에서 '폭력'의 독버섯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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