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흙을 닮은 사람
조선일보
- 이원하 시인
입력 2020.06.26 03:10
이원하 시인
같은 크기의 그릇을 두 개 준비한다.
한 그릇엔 투명한 물을 담고, 다른 한 그릇엔 흙을 담는다.
그리고 같은 양의 빨간 물감을 떨어뜨린다.
물은 빨갛게 오염되고 흙은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물은 과거에 얽매이고, 흙은 과거를 제쳐둔 채로 무던히 갈 길을 가는 것이다.
두 차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상황은 '좋은 평가'를 받을 때와 '안 좋은 평가'를 받을 때다.
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듯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안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수학 문제지에 받은 '×'와 예술 작품에 받은 '×'도 다르다.
이 지겹고 정답이 없는 평가를 살아가는 내내 받아야 하는 건 인간의 숙명일까.
'좋은 평가'는 그저 좋은 것으로 그치지만, '안 좋은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납득이 가는 평가와 단지 감정이 격양돼 인신공격에만 집중된 평가.
인신공격에만 집중된 평가는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곤히 자려고 누우면 꼭 내 옆으로 와서 함께 드러눕는다.
사실 나는 그다지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아버린 사람이다.
물의 성질보다 흙의 성질을 갖춘 사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상처와 맞서야 했다.
가끔 선배들이 해주는 나에 대한 안 좋은 평가는 따끔한 조언이 되어 나를 납득시킨다.
오염이 아닌 마른 흙에 물기가 되어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만약 내가 흙이 아닌 물에 그쳤다면 새까맣게 오염됐을 테다.
하지만 흙이 되었기에 좋은 방향으로 상황이 흐른 것이다.
이렇듯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주변에 흐르는 모든 언어를 즐길 수 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적당히 착각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남의 눈치 보며 두드린 곳에는 미련만 있다.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믿고 나아간 곳에 성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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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6/2020062600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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