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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코끼리에게 부끄럽다

colorprom 2020. 6. 19. 14:53

[카페 2040] 코끼리에게 부끄럽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19 03:16

최보윤 문화부 차장

 

 

"코끼리들죽음을 이해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래전 죽은 동료의 시신, 유해와 뼛조각을 발견하면 서로 모여들고 긴장한다.

떼로 다가가 뼈를 어루만지는데 꼭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음악은 없었지만 춤을 추는 듯했다. 침묵의 장송곡."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조디 피코(Picoult)의 소설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원제 Leaving time·2014) 속 한 구절이다.

 

코끼리 인지능력을 조사하는 과학자 엘리스와 그녀의 딸인 제나,

엘리스 실종 사건을 담당했던 전직 형사 버질, 심령술사 세레니티 등이 등장해

각각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열세 살 제나는 10년 전 엄마가 실종된 뒤 지독한 상실과 그리움으로 허덕이다

버질, 세레니티 등과 함께 직접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동안 왕따와 총기 난사 사건('19분'), 장기기증과 맞춤 아기('마이 시스터즈 키퍼'),

인종차별('작지만 위대한 일들') 등 사회적 이슈가 되는 소재를 극화해 풀어낸 피코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에선 코끼리의 사회성과 모성을 인간 사회와 비교해가며 반전을 거듭한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딸과 함께 직접 아프리카 보츠와나 코끼리 보호지역을 다니면서

코끼리의 습성을 연구했단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면서도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섬세한 묘사가 눈에 띈다.

 

죽음을 목도하면서 수만 갈래로 갈라진 코끼리의 회색빛 거죽이 출렁일 땐,

까맣게 타들어가고 갈가리 찢긴 상실과 통한의 심정을 그 주름 사이사이 결마다 새겨놓는 듯하다.

 

예전엔 그저 흥미로만 읽었던 이 책이 최근 다시 생각난 건 책 속 몇 줄 때문이었다.

알로마더링(Allomothering). '온 마을이 나선다'는 뜻으로,

무리가 새끼를 기르고 보호하는 코끼리들의 공동 양육 방식을 말한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어도 2년간은 공동 육아로 자라나는 것이다.

많은 엄마를 든든하게 두면서, 새끼는 친어미와의 끈끈함으로

야생에서 둘 중에 누가 하나 죽을 때까지 서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지낸다고 했다.

'학대 아동'이었던 원영이 사건이 잊히지도 않았는데,

뉴스를 보며 정신적 폭행을 당하는 듯한 아동 학대 사건을 연달아 바라보며

'모두의 어머니가 되는' 코끼리의 육아가 새삼 떠올랐다.

 

아동 학대 가해자의 80%부모라고 한다.

미국에선 교사와 의사·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의심 상황에 대해 의무적으로 '핫라인' 등으로 신고하게 돼 있다는데도

하루에도 다섯 어린 생명이 학대로 목숨을 잃는다.

 

최근 들어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사회적 격리를 통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학대가 더 많아질 위험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신고 제도 등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남의 집 가정사인데…'라며 선뜻 나서거나 끼어들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들린다.

얼마 전 배우 신애라씨를 만났을 때다.

입양을 실천하는 등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 양육에 굉장히 관심 많은 그녀는

미국 유학 기간에 받은 '위탁 가정교육'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했다.

양육법부터 학대 방지 등 사회적 약자인 아동을 보호하면서도

부모 역시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마인드컨트롤 등을 배우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행동을 그들 시선에서 공감해주는 것이라 했다.

"'부모 자격증'을 발급받아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어쩌면 금세 현실화될지도 모르겠다.

코끼리의 양육법까지 체득하기 어렵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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