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 LIVE] 나라가 나를 지켜줄까?
조선일보
- 강인선 부국장
입력 2020.06.19 03:16
北의 폭파에 공포감 느끼는데 대통령은 대북정책 유지만 생각
"이 나라에서 나는 안전한가" 국민은 근본적 질문 던지고 있다
강인선 부국장
북한이 공개한 33초짜리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영상을 여러 번 들여다봤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한국이 180억원 들여 지어준 4층 건물이 산산조각이 났다.
9·11 테러 때 항공기 자살 테러 공격으로 뉴욕의 무역센터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물론 북한 땅에서 일어난 일이고 규모도 작고 사람이 죽지도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 폭발하는 폭력성과 강렬한 적의는 무섭게 닮았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이 정부의 현실감 부족한 대북 정책과 대미 정책을 상징한다.
미국은 남북 관계와 비핵화 진전의 속도를 맞추라며 개소를 서두르는 한국을 말렸다.
유엔 제재 위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 갈등은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 한국이 무얼 하든 사전에 미국과 조율하도록 한
워킹그룹이 가동된 중요한 배경이기도 했다.
무리한 시작은 결국 이렇게 파국을 맞았다.
한 지인은 "이 나라에서 법 지키고 세금 내고 살면서,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나라가 나를 지켜준다'는 데까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어본 일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대북 전단 트집 잡기에서 막말 폭격, 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으로 이어지는 도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나는 안전한가'란 의문을 갖게 됐다고 했다.
자신은 북한의 도발에 위협과 공포감을 느끼는데 정부는 여전히 기존 대북 정책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과연 자신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이런 의문을 일으킬 만했다.
청와대는 폭파 두 시간 만에 대통령 없이 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강력한 유감을 표시했다.
국방부도 강력 대응을 경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날 외교안보 원로들과의 오찬에서
"계속 인내하며 남북 관계 개선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은 "대포로 폭파하지 않은 것이 어디냐"고 했다.
진중권 전 교수가 "창의적 개그 감각"이라고 했던 그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김두관 의원은
"이 기회에 평양과 서울에 남북대사관 역할을 할 연락사무소 2개를 두는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고 했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도 촉구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놓으라는 얘기로밖엔 안 들린다.
북한이 군사 도발을 암시하는 등 상상을 뛰어넘는 조치를 하겠다고 벼르는데도
정부는 거의 종교적 수준으로 기존 대북 기조를 유지할 태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만 유지하면 시간은 미국 편이란 입장이다.
그 전제하에서 앞으로 몇 달 어떤 대북 정책이 재선에 도움 될지만 계산할 것이다.
바다 건너 동맹국에서 한국민의 안보 불안까지 공감하진 않는다.
트럼프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북한의 공동사무소 폭파는 "'대화하자'는 북한식 어법"이라고 했다.
위기를 조장해 대화를 시작해보려는 속셈이란 것이다.
또 다른 전직 관리는 "북한이 새 판을 짜려는 것"이라고 했다.
남북, 미·북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경제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판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이웃해 시달린 탓에 우리는 모두 나름 대북 전략가이다.
북한의 한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북한 말을 곧이곧 대로 듣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북한 도발의 강도와 박자가 비정상적으로 달라질 때 본능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연락사무소와 함께 무너진 건 단순히 남북 화해의 상징만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안전감도 흔들렸다.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실패 위기에 빠지면 조정하면 되지만,
이 나라가 나를 제대로 지켜줄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전부가 흔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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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9/20200619000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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