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사람들은 왜 보상도 없는 재난 현장에 달려가는가 (김태훈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20. 3. 7. 14:38



사람들은 왜 보상도 없는 재난 현장에 달려가는가


조선일보
                         
             
입력 2020.03.07 03:00

주말 근무 하던 백악관 보좌관들, 수당으로 보상하자 출근 안 해
아이 데리러 늦게 오는 부모에게 어린이집, 벌금 물리자 지각 늘어
"이익이나 보상 바라지 않고 가치 위해 헌신하는 사람 많아"

'도덕경제학'
도덕경제학|새뮤얼 보울스 지음|박용진 등 옮김|흐름출판|388쪽|1만8000원

인간을 정의하는 표현은 여럿 있지만, 그중 경제학에서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합리적 인간이라면 이득을 최대화하는 선택을 한다고 가정한다.

'꿀벌의 우화'로 유명한 버나드 맨더빌은 심지어
"사회질서 유지에 미덕은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된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덕분에
빵집 주인의 이기심이 풍성한 식탁이란 공익을 창출한다고 갈파했다.

이기적인 인간을 절묘하게 통제해 공공선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마키아벨리부터, 데이비드 흄, 존 S 밀, 벤담 등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법과 공공정책, 민간 조직은
사람은 이기적이며 도덕에 무관심하다'호모 에코노미쿠스'적 인간관에 근거해
질서를 세우고 규칙의 집을 짓는다.

각종 인센티브벌칙도 그런 전제하에 만들어지고 제공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친 대구로 달려가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 구급차 기사와 소방대원들도
호모 에코노미쿠스적 인간인가.
그들이 대구에서 벌이는 모진 사투도 인센티브에 이끌린 행동인가.

이 책을 쓴 경제학자 보울스도 같은 의문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이득이나 보상보다 거룩한 가치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무릅쓴다"며
"오히려 경제적 인센티브가 인간의 선한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 사례가 대표적이다.
셸링은 1950년대 초 대통령 보좌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주말도 없이 격무에 시달렸다.
보좌진을 다독이고 싶었던 대통령은 토요일 초과근무 수당을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정작 수당이 지급되자 참모들이 토요일 회의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국가를 향한 헌신에 가격이 매겨지자 보좌관들이 수당을 포기하고 휴식을 택한 것이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대구에서 지원 활동을 벌이던 의료진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대구에서 지원 활동을 벌이던 의료진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섣부른 벌칙 부과도 신중하지 못한 인센티브만큼이나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이스라엘 하이파(Haifa)에 있는 어린이집 여섯 곳은
일부 부모가 저녁에 자녀를 늦게 데리러 오자 이를 막기 위해 벌금을 물렸다.
부모는 이 벌칙의 취지와 정반대로 행동했다.
지각한 시간만큼 추가요금이 정해지자,
교사의 시간을 빼앗아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윤리적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지각을 자신들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지각하는 부모가 줄기는커녕 더 늘고 말았다.

잘못된 인센티브와 벌칙 부과
이기심을 부추기고 상호 배려하는 시민 문화를 훼손하는 역효과,
'몰아냄 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몰아냄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인센티브와 규제에 담긴 '윗분'의 메시지를 읽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회사 물품을 빼돌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 보안 장치를 강화하면,
직원들은 "사장이 나를 잠재적 도둑놈 취급하는구나"라고 느껴 회사를 향한 충성심을 버린다.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지게 하는 과도한 인센티브나 저항 의지를 꺾을 정도로 가혹한 규제도 금물이다.
이런 정책이 인간의 자기 결정권을 훼손하고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사실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인간숭고한 감정희생정신, 높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비경제적 선택을 하는 존재다.
따라서 정책을 수립할 때 이런 인간 본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심화하는 빈부격차, 기회 불균등 문제도
'인간은 이기적 선택을 한다'는 그릇된 전제에서 비롯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기심에 근거한 경제학이 아니라 도덕 경제학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도덕성만으로 국민국가 규모의 조직을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인센티브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받아들일 게 아니라 몰아냄 효과가 아닌 끌어들임 효과를 내도록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 나오는
"입법자들은 습관을 심어줌으로써 사람을 좋은 시민으로 만든다"는 법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에선 영웅적 행동을 금전적으로 보상하기보다 영예로운 금관을 주는 것으로 치하했다.
잘 짜인 법·제도신중한 인센티브인간의 선한 본성과 합쳐질 때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 대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원하는 것도
금전으로 환산된 인센티브가 아니라
그들의 노고를 헛되지 않게 해줄 방역 체제 수립,
그들이 흘린 땀에 보내는 응원과 감사의 박수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7/20200307000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