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서민의 저력과 위정자의 책무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

colorprom 2020. 3. 6. 14:49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60] 서민의 저력과 위정자의 책무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입력 2020.03.06 03:13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같은 말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다른 말들이 꽤 된다.

이를테면 '서민(庶民)'이 그렇다.


서민은 옛날 중국에서 작위나 관직이 없는 장삼이사를 칭하던 말이다.

한자 '庶'는 숫자가 많거나 널리 퍼져 있다는 뜻으로,

이것저것 하는 업무를 서무(庶務), 널리 바꾸는 개혁을 서정(庶政) 개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서민'경제적으로 곤궁한 계층'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반면,

일본에서는 경제적 곤궁보다는 '특별한 신분이나 높은 지위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라는 의미에

방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서민의 눈물' '서민의 애환' 등의 관용구가 흔히 쓰이지만,

일본에서는 '서민 문화' '서민 감각' 등의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서민 문화는 가난한 자들의 문화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귀족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주체인 문화라는 뜻이다.

그만큼 자긍심과 애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서민 감각은 지배층의 세상 물정과 동떨어진 특권·선민 의식과 대비되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 감각이라는 뜻이다.

한국 '국민 정서'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듯하다.

또 하나의 사례가 '저력(底力·일본어 발음 소코지카라)'이다.

한자의 뜻은 '밑바탕 힘'이지만, 사용 맥락은 한·일 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마라톤의 40㎞ 지점을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라고 할 때,

한국어의 저력은 막판에 발휘하는 '뒷심' '뚝심'의 의미지만,

일본어의 저력은 지니고 있는 '진짜 힘'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평소 갈고닦은 힘, 꼭 필요 할 때 발휘되는 힘,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쉽게 없어지지도 않는 본연의 힘

이라는 말이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건 집단이건 결정적 순간에 발휘하는 힘만큼만 힘이 있다고(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나라의 근본 힘서민의 저력이며,

위기의 순간에 그 저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위정자의 자격이자 책무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6/20200306000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