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우한 폐렴][대구]어느 외국 특파원의 기자수첩

colorprom 2020. 3. 6. 15:00



[만물상] '대구의 품격'


조선일보
                         


             
입력 2020.03.06 03:18

공포가 덮친 도시는 을씨년스럽고 음울하다. 카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 항구 오랑은 죽은 쥐가 나타나면서 아비규환으로 변해간다. 나를 해칠 바이러스를 품고 있을 상대에 대한 불신, 나만은 살아야 한다는 절규가 증폭되면서 도시는 지옥이 된다. '코로나 발원지' 중국 우한이 그러했다. 대구시 홈페이지에 코로나 확진자 수를 알리는 그래프도 숨가쁠 정도로 가팔랐다. 바리케이드 쳐진 삭막한 유령도시가 연상됐을 정도다.

▶그런 상상을 하며 대구에 갔을 미국 ABC방송 기자 눈에 비친 대구 풍경은 전혀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이곳에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다. 절제와 고요함만 있다"는 말로 칼럼을 시작했다. 그러고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뉴노멀이 된 지금, 대구는 많은 이에게 삶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대구 현장에서 취재 중인 동료에게 전화해보니 외신 기자의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시장도 교통도 병원도 조용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잔뜩 겁에 질려 서울에서 내려온 한 공무원은 며칠 지나 말했다고 한다. "도시가 마치 동면하듯 조용히 숨쉬고 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대탈출도 없었다. 대구에 있는 부모에게 타지에 있는 자식이 "당장 빠져나오시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뭐 하려고 자식까지 고생시키냐" "민폐 끼치기 싫다"고 한다. 한때 정권은 '대구 봉쇄'를 검토했는지 모르지만 대구 시민은 스스로 출입을 자제하고 있었다. 대신 출향 인사들이 대구로 달려왔다. 특히 방역에 보탬을 줄 수 있는 이곳 출신들이 적극적이었다. 외지에서 들어온 의료인이 500명도 넘는다.

▶사재기도 없었다. 비슷한 우려를 담은 보도가 나오면 시민들은 "평소와 똑같다. 왜곡하지 말라"며 불쾌해한다. 일주일째 마스크 사러 늘어선 긴 행렬 속에서도 큰 목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다. 고생하는 의료진에게는 병원마다 도시락, 빵, 과일 같은 위로 물품이 쌓인다. 어떤 모텔은 건물 한 동을 비워 외지 의료인에게 내놓았다.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임대료를 내려 받거나 유예하는 '착한 건물주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경증 환자는 '나는 그나마 낫다'며 자발적으로 병실을 양보한다. 서로 이기심을 내려놓는다. '사람의 인격'이란 오히려 위기에서 드러나듯 '도시의 품격' 또한 극한 상황에서 확인된다. 카뮈는 재앙에 맞서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했다. 현실에서 그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 지금 대구다. 품격 있게 바이러스와 싸우는 대구는 결국 승리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6/2020030600050.html



"얼씬도 마래이, 나도 안간데이" 자발적 격리 택한 대구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입력 2020.03.06 01:34

[본지 특별취재팀, 코로나와 사투 대구 현장을 가다]

동대구역 KTX 승차인원 작년 10분의 1 수준, 스스로 이동 자제
매일 수백명씩 환자 늘어나도 차분한 대응… 어르신이 솔선수범

5일 서울에서 출발한 KTX 251열차가 동대구역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총 18량의 객실에서 내린 사람은 본지 취재팀을 제외하고는 4명. 오가는 승객들로 붐볐을 대합실도 적막했다. 운동장 같은 대합실의 의자에는 단 3명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누가 봐도 노숙자였다. 역 앞에서 잡은 택시 기사 김경제씨는 "2시간을 넘게 기다려 처음 태운다"고 했다.

우한 코로나 확진자 최다(最多) 도시 대구로 들어서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었다. 이날 0시 기준으로 대구의 우한 코로나 환자는 4326명. 전국 환자(5766명)의 75%가 대구에 몰려 있다.

최근에는 매일 400~700명씩 환자가 늘어난다. 차도에는 그나마 차량이 한산하게 오갔으나 인도(人道)엔 사람이 없었다. 수㎞에 한둘씩 보이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도시는 적막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5일 오후 7시쯤 마스크를 쓰고 걷던 한 노인이
대구 중앙로 인근 국수 전문점 ‘월드국수’ 앞 노상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국숫집 창가에는 ‘힘내라 대한민국’ ‘힘내자 대구시민’ 팻말이 걸려 있다.
이곳을 비롯해 일대 대부분 상점은
우한 코로나가 확산하며 저녁 장사를 포기하고 문을 닫았다. /오종찬 기자

이번 사태의 진원지 중국 우한에는 1월 23일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무장 경찰과 공안이 기차역과 주요 도로마다 길목을 지키며 우한을 빠져나가는 사람을 막았다. 그러나 그 봉쇄 조치 직전 이미 500만명이 우한을 탈출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대구에는 봉쇄 조치가 내려져 있지 않다. 누구나, 언제든, 자유롭게 대구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대구 시민들은 다르게 움직였다. 작년 3월 1~4일 동대구역 전체 KTX 승차 인원은 5만8192명, 하루 1만4548명꼴이었다. 이것이 올 3월 1~4일엔 5948명, 하루 1487명으로 줄었다. 10분의 1 수준이다. 특히 2월 29일은 대구의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741명으로 하루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다. 확진자가 폭증하며 마치 우한의 초기와 같은 양상을 보일 때 대구 시민들은 탈출 대신 대구를 벗어나지 않는 '자발적 봉쇄'를 선택했다. 자기희생적인 선택으로 공동체를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대구의 부모들은 외지로 나간 자녀들의 "빨리 빠져나오이소"라는 독촉에도 오히려 "대구에는 얼씬도 하지 마래이. 나도 안간데이"라며 지역 간 격리에 솔선하고 있다. 수성구 시지동에 사는 윤명숙(70)씨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강원도 원주에 사는 큰딸(41)과 울산의 작은딸(39)이 몇 차례나 자기들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더구나 지난 1일은 윤씨의 칠순 생일이었다. 큰딸 김모씨는 "어머니가 칠순의 '칠'자도 못 꺼내게 하셨다"며 "대구는 위험하니 찾아가지도 못하게 하고, 당신도 (자녀들 집에) 오질 않으려고 하신다"고 했다. 여당이 '대구 봉쇄' 운운한 것은 대구의 시민 의식 수준 앞에서 무참했다.

〈대구 특별취재팀〉

팀장=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박원수·최재훈 ·오종찬·권광순·표태준·류재민·이승규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6/2020030600080.html

[윤희영의 News English] 어느 외국 특파원의 기자수첩


조선일보
                         
  • 윤희영 편집국 에디터
             
입력 2020.03.03 03:14

'[기자수첩(Reporter's Notebook)]: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진원지 안에서
(Inside the epicenter of the Korean novel coronavirus outbreak)'
미국 ABC방송 이언 패널 특파원이
대구에 직접 가서 현지 상황을 생중계한(carry its local situation live) 후
[기자수첩] 형식으로 쓴 기사의 제목이다.

"대구는 한국에서 넷째로 큰 도시(fourth largest city)다.
사과로 유명했던(be famous for its apples) 곳인데, 코로나19로 더 유명해졌다.
한국의 급증하는 코로나19의 진원지다.
그런데 공황 상태(panic)를 찾아볼 수 없다.
폭동(rioting)도 없고, 수많은 감염환자를 수용하고 치료하는 데 반대하며
(oppose the housing and care of a great many infected patients)
두려워하는 군중(fearful mobs)도 없다.
절제심 강한 침착함과 고요함(stoic calm and quiet)이 버티고 있다.

[윤희영의 News English] 어느 외국 특파원의 기자수첩
대구는 '특별관리지역'으로 선포됐다(be declared a 'special management zone').
그러나 봉쇄된(be put on lockdown)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언제든 대구를 벗어날 수 있고,
애완견 산책을 시키거나 식료품을 사러 나갈(go out to walk their pet dogs or get their groceries)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대구 시민들은 마스크가 절박한 공급 부족 상태에 있다는(be in desperately short supply) 사실을
알면서도 참을성 있게 줄을 선다(queue patiently).

취재진은 한 병원에서 언제쯤이면 앰뷸런스가 아픈 아버지를 모시러(collect his sick father)
올 수 있느냐고 차분하게 묻는 한 남성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이내 집에 돌아가 순서를 기다리라는(wait his turn) 말을 듣고
순순히 발길을 돌렸다(turn back without making a scene).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 한 시간 남짓 머무는 동안
취재진은 방호복 차림의 구급대원들(paramedics in hazmat suits)이 운전하는 앰뷸런스가
줄줄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감염 환자를 내려놓은 앰뷸런스는 즉시 호스로 살균제가 뿌려지고(be hosed down with disinfectant) 차내 훈증 소독 처리가 된(be fumigated) 뒤 곧바로 방향을 돌려
또다시 출동했다(be turned around and sent out again).

병원 원장은 의사, 간호사, 의약품, 병상 등 모든 것이 더 필요하다고(need more of everything) 했다. 그러면서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be determined to overcome).
그는 생명을 구하는 24시간 업무로 되돌아가며
(turn back to the twenty-four hour task of saving lives)
취재진에게 전 세계에 전할 한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병원이 대구 시민들을 구하기 위한 노아의 방주(Noah's Ark to save Daegu citizens)라고
생각한다. 대단히 심각한 전염병은 아니다. 이겨낼 수 있다.'

대구코로나19와 함께 사는 것이 새 일상이 된 2020년,
많은 우리에게 삶의 모델(model for life)처럼 비쳤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2/20200302040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