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0 화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마태복음 26장 47-56절
가룟유다가 대제사장과 장로들로부터 파송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한 사람,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유다는 이제는 예수를 파는 배신자 유다가 되어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는 입맞춤으로 인사를 합니다.
유다의 입맞춤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지목하기 위한 “군호”(세메이온), “표적”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의 관례에 따르면 입맞춤은 존경과 경의의 표시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를 배반의 표시로 바꾸어 버립니다.
유다의 입맞춤이 끝남과 동시에, 유다와함께 왔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체포합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립니다.
요한복음 18장 10절 의하면, 그는 베드로였고 귀가 잘린 대제사장의 종의 이름은 말고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원수된 이들을 꾸짖는 것이 아닌, 예수 제자의 삶의 방법을 다시한번 말씀하십니다.
첫째,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자는 폭력을 통해서 망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듯이 ,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 그대로, 원수된 우리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된 우리들 역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능력을 소유한 만왕의 왕이시기에,
열 두 영이 더 되는 천사들을 동원하여 악의 세력들을 멸하실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된 우리들 역시, 삶의 모든 과정속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지금부터 당하실 고난과 고통은 성서의 성취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만일에 폭력을 사용하여 이 위기를 피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최고의 삶의 목적, 삶의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함이 아닌, 자신의 생명을 한알의 밀알처럼 땅에 썩혀서,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칼은 칼집에 다시 꽂게 하고, 순순히 체포되어 무력하게 이끌려가십니다.
예수님을 보고있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길로 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방법인 십자가의 길을 향해 기꺼이 걸어가십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기도하셨던 예수님,
악을 선으로 갚으시고,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을 선택하며 의연한 결단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자기부인의 길, 십자가의 그 길을 향해 나아가신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같이 기도하고, 예수님과 같이 일상 속에서, 세상의 방법,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주의 말씀을 좆아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때로는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고통, 인내가 수반될지라도
그길이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임을 믿는다면, 더 인내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미련하고, 더디게 여겨질찌라도, 그 길을 선택해야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랍비여 안녕하십니까?의 입맞춤이 존경의 세메이온이 되고,
진정한 예배자로 바로 서서, 주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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