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2.02 03:13
여권(與圈)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번복하면
이에 반발하는 지지층이 이탈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지소미아 종료를 연기하기 이전엔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의 70~80%가
'지소미아를 계획대로 종료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 얼마 전까지도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소미아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지소미아 종료를 연기한 직후인 23~24일 실시한 MBC 조사에선
대통령 지지층의 72%가 '종료 연기는 잘한 결정'이라며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
지소미아를 종료해도, 연기해도 '잘했다'고 칭찬했다.
이른바 '묻지 마 지지'다.
문 대통령을 향한 '묻지 마 지지'는 주요 정책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을 향한 '묻지 마 지지'는 주요 정책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갤럽은 경제, 고용·노동, 교육, 대북, 국방, 외교, 인사(人事), 복지 등
8개 분야 정책을 평가하는 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층의 43%가 '잘못하고 있는 정책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부정 평가 항목이 한 개에 불과한 경우(20%)까지 포함하면,
지지층의 다수인 63%가 정부 정책에 거의 불만이 없었다.
또 갤럽의 11월 둘째 주와 셋째 주 조사에선 대통령 지지층에게 '왜 지지하냐'고 물었더니
'모름·응답 거절'이 1위였다.
구체적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도 지지를 보내는 팬심(Fan心) 가득한 지지층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다.
'묻지 마 지지'는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다. 그게 신기루였다는 것도 이미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도 임기 4년 차인 2016년 2월까지 40%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콘크리트 지지층의 존재를 과시했다.
당시에도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 이유 1위가 '모름·응답 거절'이었다.
역시 맹목적 지지가 많았다는 의미다.
얼마 후 지지층이 허망하게 산산조각 난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문 대통령도 팬덤의 폐해를 강하게 지적한 적이 있다.
2017년 초 탄핵 정국 때
"묻지 마 지지로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불러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현 정부 들어 '좀비를 닮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성 지지층의 기세는 더 맹렬해졌다.
조국 사태에서 보았듯이 열성 지지층에만 호소하는 '팬덤 정치' 양상도 더 심해졌다.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 연기에 대해 "대통령의 원칙과 포용 외교의 판정승"이라고 한 것은
지지층을 붙잡기 위한 포장술이었다.
"소득 주도 성장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등 엉뚱한 주장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지층은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대상이지 기만의 대상이 아니다.
'이니 마음대로'를 외치던 지지층도 멀지 않아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게 바로 레임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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