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1.27 03:01
30代 중도 성향… 빅3구도 흔들어
모금행사, 지난 2월엔 25명 참여… 최근엔 2000명 몰려들어 대성황
親기업 정책… 소도시 재생 신화, 동성애자… 흑인 지지율 낮아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스타트업(start-up·초기 벤처기업)."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지지율 4위를 달리고 있는
피트 부티지지(37·사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을 두고 실리콘밸리 거물이 한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 지난 2월 부티지지 모금 행사를 열었을 때 모인 인원은
25명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2000명씩 몰린다고 한다.
민주당 유력 주자군 중 유일하게 중앙 정치 경험이 없는 최연소 주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부티지지는 대선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초기 경선주에서 잇따라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내년 2월 가장 먼저 경선을 치르는 아이오와주에선
최근 CNN/디모인레지스터 조사(16일)에서 25%, 아이오와주립대 조사(21일)에서 26%를 기록하며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70)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 등
70대 거물들을 제치고 1위를 했다.
부티지지는 두 번째 경선이 열리는 뉴햄프셔주를 대상으로 한 세인트앤셀름대 조사(19일)에서도
25%로 처음 1위를 차지했다.
부티지지는 아직 전국 종합 순위에서는 한 자릿수 지지율로 4위에 그치지만,
이미 '빅3'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부티지지의 지지율 상승세는 워런 상원의원의 하락세와 맞물려 두드러지고 있다.
사회주의에 가까운 좌파로 분류되는 워런에 대한 중도 성향 유권자의 공포가 커지면서,
중도 후보 중 노회한 바이든 대신 젊은 후보 부티지지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부티지지는 최근 TV 토론에서 워런의 부유세나 건강보험 완전 공공화 정책에 대해
"중산층에 세금 폭탄을 때릴 것"이라고 공격하면서 중도 민심을 파고들었다.
부티지지의 약진은 갈 곳을 못 찾던 중도층의 갈증을 반영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최근 워런·샌더스 등의 좌편향 공약과 선명성 경쟁에 대해
"대중 여론과 동떨어졌다"고 제동을 걸고,
최근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보수 성향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중도 후보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부티지지는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준다.
아이오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당파층에서도 부티지지 지지자가 많았고,
특히 연소득 10만달러(약 1억1800만원) 이상 중산층과 중도층에서는 그가 타 후보를 압도했다.
부티지지의 최대 경쟁력은 '쇠락한 중서부 소도시 재생 신화'를 썼다는 점이다.
인디애나주 인구 10만 도시에서 만 29세인 2011년 시장에 당선,
친기업 정책으로 투자를 유치해 실업률을 크게 낮췄다.
이런 중서부의 경합주(swing states)는 2016년에 이어 내년에도 대선 최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아이오와는 백인 유권자가 90%를 차지하는 중서부 지역이자, 부티지지의 텃밭인 인디애나와 인접해
백인 중도층에서 인기가 높은 부티지지에게 지지를 몰아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워런의 지역구(매사추세츠)에 가까운 동부 뉴햄프셔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서부 실리콘밸리에서도 인기가 높아지면서 '부티지지 돌풍을 예사로 볼 게 아니다'란 분위기가 생겼다.
구글·페이스북 등 거대 테크기업 해체론까지 내세운 워런 의원 등과 달리,
부티지지는 2017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사우스벤드시를 찾았을 때 직접 안내하고
최근 선거 캠프에 저커버그가 추천한 인력을 채용했다.
부티지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 재능과 경험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버드대 졸업 후 로즈(Rhodes) 장학생에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를 나온 데다,
몰타어·프랑스어·노르웨이어·페르시아어 방언 등 7개 국어를 구사하고,
사우드벤드 시장 시절 무급 휴직을 내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자원해 참전한 이력 등은
여러 계층에 어필할 수 있는 소재다.
그의 약점은 민주당 경선 고비를 넘는 데 필수인 흑인 등 유색인종의 지지를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아
이오와·뉴햄프셔에서 1위를 할 때,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사에선 흑인 지지율이 '0%'로 나올 정도였다.
부티지지는 중학교 교사 '남편'을 둔 동성애자로,
동성애에 더 엄격한 흑인 사회의 거부감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일 TV 토론에서 성소수자로서 느꼈던 "배제되고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듯한 감정"을
흑인 차별과 비교해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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