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1.30 03:00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독일어가 있습니다.
남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은밀한 쾌감이랄까.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쌤통' 혹은 '아이 고소해' 같은 거죠.
그러면 안 되지만,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한 일본에 우리 국민이 느끼는 감정이 아마 비슷할 겁니다.
서울대 규장각연구원 김시덕 교수의 '일본인 이야기'(메디치刊)를 읽다가 멈춘 대목이 있습니다.
서울대 규장각연구원 김시덕 교수의 '일본인 이야기'(메디치刊)를 읽다가 멈춘 대목이 있습니다.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1894~1895)으로 우리 백성들이 고통받았지만,
이 고통은 근본적으로 누구 때문인가.
일본이나 청나라가 아니라 결국 조선의 왕족 책임 아닌가라는 반문이었죠.
김 교수에게 주말 섹션의 연재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시작은 3년 전 인터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근의 대중에게는 도시 답사가(踏査家)이자 탐험가로 더 이름났지만, 그의 전공은 문헌학.
특히 역사와 문학을 가로지르는 예외적 재능의 보유자입니다.
그날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무지개의 스펙트럼'이란 비유를 썼죠.
문헌은 흑백논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빨강부터 보라까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갖고 있다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친일파'와 '빨갱이'만 있을까요.
대부분은 좌와 우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자리합니다.
원고 청탁은 그의 균형 감각에 대한 신뢰였죠.
16세기 일본 각 지역에서는 소위 '잇코잇키'가 일어납니다.
경제적 역량을 키운 일본의 피지배집단이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일어난 일종의 반란.
비슷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건 대략 19~20세기입니다.
김 교수는 조선의 피지배집단이 지배집단을 최대치까지 위협한 사건을 갑오농민전쟁(1894)으로 보더군요.
이때 조선의 군주는 고종이었습니다.
임금은 청나라를 끌어들여 반란을 제압하려 했고, 이 틈을 타 일본군이 개입합니다.
그 이후 진행된 비참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죠
.
지소미아 해프닝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기세등등했던 이 정권의 몇 달 전 구호를 떠올립니다.
죽창가, 토착 왜구, 넘볼 수 없는 나라….
샤덴프로이데와는 별개로, 우리 내부의 모순을 남 탓으로 돌리는 건 터무니없죠.
군국주의 지향하는 아베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총선은 한·일전이라고 외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내일부터 12월입니다. 모두들 따뜻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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