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친일파와 빨갱이 사이, 무지개 스펙트럼 (어수웅 부장,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1. 30. 15:32


친일파와 빨갱이 사이, 무지개 스펙트럼


조선일보
                         

입력 2019.11.30 03:00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독일어가 있습니다.
남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은밀한 쾌감이랄까.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쌤통' 혹은 '아이 고소해' 같은 거죠.
그러면 안 되지만,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한 일본에 우리 국민이 느끼는 감정이 아마 비슷할 겁니다.

서울대 규장각연구원 김시덕 교수의 '일본인 이야기'(메디치刊)를 읽다가 멈춘 대목이 있습니다.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1894~1895)으로 우리 백성들이 고통받았지만,
이 고통은 근본적으로 누구 때문인가.
일본이나 청나라가 아니라 결국 조선의 왕족 책임 아닌가라는 반문이었죠.

김 교수에게 주말 섹션의 연재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시작은 3년 전 인터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근의 대중에게는 도시 답사가(踏査家)이자 탐험가로 더 이름났지만, 그의 전공은 문헌학.
특히 역사와 문학을 가로지르는 예외적 재능의 보유자입니다.

그날 인터뷰에서 김 교수'무지개의 스펙트럼'이란 비유를 썼죠.
문헌은 흑백논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빨강부터 보라까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갖고 있다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친일파'와 '빨갱이'만 있을까요.
대부분은 좌와 우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자리합니다.
원고 청탁은 그의 균형 감각에 대한 신뢰였죠.

16세기 일본 각 지역에서는 소위 '잇코잇키'가 일어납니다.

경제적 역량을 키운 일본의 피지배집단이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일어난 일종의 반란.


비슷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건 대략 19~20세기입니다.

김 교수는 조선의 피지배집단이 지배집단을 최대치까지 위협한 사건을 갑오농민전쟁(1894)으로 보더군요.

이때 조선의 군주는 고종이었습니다.

임금은 청나라를 끌어들여 반란을 제압하려 했고, 이 틈을 타 일본군이 개입합니다.

그 이후 진행된 비참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죠 .

지소미아 해프닝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기세등등했던 이 정권의 몇 달 전 구호를 떠올립니다.

죽창가, 토착 왜구, 넘볼 수 없는 나라….

샤덴프로이데와는 별개로, 우리 내부의 모순을 남 탓으로 돌리는 건 터무니없죠.

군국주의 지향하는 아베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총선은 한·일전이라고 외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내일부터 12월입니다. 모두들 따뜻하시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9/20191129028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