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0.26 03:16
"언젠가 자네가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반드시 듣고 싶네."
이종환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사장이 재단 장학생을 만날 때마다 건네는 덕담이다.
이사장이 '노벨상'을 입에 달고 다니니
재단 실무자들도 장학생들 만날 때 해주는 최고의 인사말이 "노벨상 받으세요"다.
▶요즘 장학금은 성적 우수자보다 가정 형편 어려운 학생들한테 우선 배정된다.
그게 장학금의 본래 취지에 맞는다는 견해도 많다.
하지만 이종환 이사장이 세운 장학재단은 철저하게 능력과 실력 위주로 운영된다.
노벨상 받는 세계 1등 인재를 키우자는 목표로 세워진 재단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나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 인물을 배출하자"는 것이다.
가난한 학생을 돕는 건 나라가 세금으로 해야 할 복지 영역이라 여긴다.
▶이 이사장은 60년 전 플라스틱과 전자제품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삼영화학을 세워 번 돈으로
아시아 최대의 장학재단을 세웠다.
그의 별명은 '자장면 회장' '큰 구두쇠'다. 점심때 자장면이나 몇천원짜리 백반을 즐겨 먹는다.
해외여행 때도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을 때만 비즈니스석을 타고 평생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온 짠돌이다.
그렇게 아끼면서 번 돈을 거의 다 장학재단에 넣었다.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며
2002년 사재 3000억원을 쾌척했고 지금까지 재산의 97%도 넘는 1조원을 출연했다.
▶1923년생인 이 이사장은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의 대학으로 유학 갔다가 학병으로 끌려갔다.
소련과 만주 국경 지대에서 영하 46도의 혹한 속에 동상 걸린 발을 동동거리며 나라 잃은 설움을 곱씹었다.
그는 나라가 망한 것은 과학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과학 강국 집념이 노벨상 염원과 인재에 대한 투자로 발전했다.
이종환 재단의 장학생 비율은 과학 계열이 80%다. 사실상 과학 장학재단이다.
나라가 죽고 사는 것이 과학에 달렸다는 생각이 담겼다.
"일본보다 노벨상을 더 많이 받는 나라가 될 때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지 않겠나"라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고 장학사업을 해온 이 이사장이
아예 '한국판 노벨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2022년부터 매년 5개 분야에 총상금이 75억원이나 된다. 노벨상보다 상금이 많다.
▶과학의 목적이 노벨상일 수는 없다.
노벨상보다 많은 상금을 건다고 한국 과학이 발전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96세 노 사업가의 평생소원과도 같은 '과학 입국' 집념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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