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5 수
마태복음 13장 24-30절
가라지 비유는 예수님이 들려주신 천국에 관한 비유 두 번째, 가라지 비유입니다.
가라지비유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국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세상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진리와 불의가 함께 공존합니다.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 되어 통치하는 이 세상에 악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이 어둠의 일들을 할 때, 하나님은 악한 이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고 침묵하십니다.
비진리가 진리인것처럼 행세를 하며, 진리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세상입니다.
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을때, 우리는 어떻게 이 시간들을 해석해야 하는가?
신정론에 대한 물음이 가라지비유를 통해 해답을 줍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4-25절)
어떤 사람이 자기밭에 좋은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2000년전, 이스라엘 땅에서는,
자기와 감정이 있는 사람의 밭에 가라지와 같은 잡초를 뿌리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덧뿌렸다”는 것은 사람들이 뿌린 씨 위에 한번 더 뿌렸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9절과 신명기 22장 9절을 보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씨앗을 섞어 뿌리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악한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렸다는 것은
마귀가 성도들의 순수한 신앙, 아름다운 신앙을 파괴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라지’가 자랄때는 보리와 거의 흡사해서 추수 때가 되어서야만 구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를 분별할때가 오나니 추수때, 곧 종말의 때입니다.
악한자가 뿌려놓은 가라지를 대하는 밭의 주인과 종들의 반응을 주목해서 보십시요!
주인은 가라지를 보고도 평온하고 태연한 자세를 보입니다.
주인은 가라지, 즉 원수의 정체를 알고 있고, 그 원수가 그렇게 할 것을 미리 알고 있기에,
주인은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습니다.
종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왜 가라지를 가만두고 보고있느냐?” 종들은 당장 가라지를 뽑아버리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추수때까지 가만두어라"말씀합니다.
주인이 가라지를 가만히 두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추수때가 되면 가라지는 뽑혀 불에 태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악한 사단의 세력이 승리한 것 같고,악한자들의 권세가 흥왕한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세상의 주권자되심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장차, 주님 다시 오실때, 이 세상의 마지막때, 알곡은 곡간에, 가라지는 지옥불에 들어가기에
세상을 보며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자들을 보며 두려워할것이 없습니다.
예수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때에 비로소 십자가의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가라지비유는 장차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할 것을 약속하는 승리와 소망의 말씀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이 감추어진듯 보여도,
믿는자들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더욱 진리편에 서서 살아야합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별이 더욱 빛나듯이,
혼탁한 이 세상이지만, 새벽별과 같은 신실한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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