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한·일 해법을 찾는다](조선일보)

colorprom 2019. 9. 2. 14:32


[한·일 해법을 찾는다]⑤ 이즈미 하지메 "日에서 피해자 의식 싹트고 있어"


            

 

입력 2019.09.02 06:00

한·일 갈등의 해법을 찾는 시리즈의 마지막 인터뷰는 일본 내 한반도 문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도쿄국제대학 국제전략연구소 교수와 진행했다. 한·일 갈등이 수출 규제 등 경제 전쟁에서 지소미아(GSOMIA·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파기와 같은 외교안보 난타전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북한이 연일 미사일(발사체)을 쏘며 한반도 안보 지형을 흔들고 있다. 일본인들의 솔직한 감정과 속내 등도 궁금했다.

서울을 방한한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도쿄국제대학 국제전략연구소 교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현정 기자
서울을 방한한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도쿄국제대학 국제전략연구소 교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현정 기자
"아, 이걸 한국인한테 설명하면, 아마도 ‘웃긴다. 웃기는 얘기네’라고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피해자 의식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잘 사는 데, 일본은 또 한국 때문에 고생해야 하나’는 것이지요. "

이즈미 교수는 결국 한·일 국력 변화에 따라 한국과 일본 모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이번 갈등도 빚어졌으며 일본에는 한국 관계에 대한 일종의 피로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제 국력이 커져 유연하고 관용적으로 나올 시점이 됐는 데도 일본에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일본인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달라진 일본의 태도를 ‘뉴(new) 일본’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거리 미사일은 괜찮다"고 말한 것이 북한이 사상 최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국면을 돌파할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즈미 교수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정치학자이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초대 소장을 거쳐 도쿄국제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주오(中央)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조치(上智)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대학원 연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센터, 영국 뉴캐슬대 동아시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이즈미 교수와의 문답은 대부분 한국어로 진행했다. 일대일 인터뷰와 전화,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 양국 갈등과 관련해 일본인들의 솔직한 심정은 무엇인가.

"일본인들의 반한(反韓) 감정은 없다. 내가 도쿄에 사는 데 지하철을 타는 한국인 관광객을 많이 본다. 그들은 한국말을 거리낌 없이 쓰고 일본인들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 양국 갈등 상황에 대해 일본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고 어떤 감정도 일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코리아 퍼티그(Korea fatigue·한국에 대한 피로감)’가 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 위안부 합의 무효 결정 등이 잇따르면서 일본의 일반 사람들은 ‘한국인들은 좀 피곤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반한 감정이 아니다. ‘한국과 좀 거리를 두고 싶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 좀더 설명해달라.

"일본에서 처음으로 ‘피해자 의식’이 싹트고 있다. 한국한테 괴롭힘(いじめ)을 당하고 있다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한국인)가 아니라 일본인이 ‘피해자’로 인식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말하면 한국인들은 ‘웃긴 이야기네’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의 계속된 요구를 받았고 일본은 나름대로 포용을 했다는 말이지. 이제 일본은 그럴 여유가 없어진 반면, 한국의 국력은 커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한국이 계속 뭔가를 요구를 한다면, 일본인 사이에서는 한국과 좀 거리를 두고 싶다는 감정이 생기지 않겠나."

― 한·일 간 인식의 차이가 크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이 관계 정상화를 했을 때 일본의 국력과 한국의 국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50년 후 어떻게 됐나.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한 반면, 일본의 성장률은 떨어져 양국이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가 됐다. 한국의 힘은 일본인이 ‘열등감’을 느낄 만큼 세졌다. ‘한국이 국력이 세진 만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관용적이고 유연하게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데, 한국은 힘이 세질수록 더 많은 요구를 하네’라고 일본인들은 생각한다.

‘한국과 거리를 두고 싶다’는 감정은 전에 없던 일본인의 모습이다. ‘뉴(new) 일본’으로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결국 한·일 갈등은 달라진 힘의 관계에서 양국 모두 익숙하지 않아 빚어졌다고 본다. 한국은 ‘뉴 일본’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

― 앞으로 아베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하나.

"한국 대법원의 판결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이 자산을 현금화하지 않는다면, 아베 정부가 더 이상의 조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아베 정부는 추가 수출 규제 조치는 하지 않으면서 징용공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다릴 것이다."

― 최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지소미아를 통해 정보를 얻었느냐는 ‘실질’ 때문이 아니다. 두 나라의 안보협력의 ‘상징’으로서 지소미아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신뢰 관계 회복은 더욱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

― 한·미 관계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지소미아 파기가 한·미 관계에 당장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의 신뢰감이 떨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이 와중에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고 있다. 8월에만 5번이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구매하기로 한 전투기 ’F-35’ 40대에 대한 억지력 성격이 크다. (미 상원은 한국에 130대까지 팔 수 있게 승인해 뒀다.) 북한이 최근 선보인 단거리 미사일은 고정형 연료를 쓰기 때문에 7~8분 이내에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이 그만큼 공격력이 우수해졌다는 것을 자랑한 것이다.

8월에 미사일 시위에 나선 이유는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구실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훈련은 실제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됐다. 북한은 잇따른 미사일 발사로 한·미를 자극하더라도 만에 하나 한·미로부터 우발적인 공격을 당할 염려가 적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이왕이면 집중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해 북한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이 끝난 후인 8월 24일에도 방사포를 쏘았다.

"8월 25일은 북한 선군절(先軍節)이다. 초대형 방사포를 통해 선군절을 기념한 것이다. 북한은 2016년 8월 24일에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다." (북한은 김정일이 류경수제105탱크사단을 시찰한 1960년 8월 25일을 '선군(先軍)영도'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하며 '선군절'로 기념하고 있다.)

― 북한의 대남 발언도 거칠어지고 비난 수위도 높이고 있다.

"8월 16일 조평통 담화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날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한의 대북 투자, 남한과의 경제 협력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 대북 제재를 완화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국의 힘으로 미국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미·북 관계를 풀어야 하는 당사자는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이 아니라 북한 그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북한은 남북 대화보다 미·북 관계 개선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는 있지만, 남북 관계가 최악이라고는 볼 수 없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비난한 적이 없지 않은가."

― 북한의 해법은?

"트럼프가 ‘단거리 미사일은 괜찮다’는 발언의 의미를 새겨야 할 것이다. 사실은 괜찮지 않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미국이 예외 조치를 해 준 것이다. 트럼프가 ‘단거리 미사일은 괜찮다’고 한 것은 첫 번째 예외 조치가 생겼다는 의미에서 북한에는 매우 의미있는 발언이다. 복잡한 제재를 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국으로부터 예외 조치를 받는 것이며 북한은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미·북 실무협상은 왜 진척이 없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완전한 비핵화 조치와 제재 유지를 강조하자 반발하고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 답방할 가능성은?

"김정은 입장에서는 서울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그런데도 답방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주변 인물들이 (서울) 답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답방한다면 내년 3월이 유력하다. 현 정부의 총선에 도움이 되고 경제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현 정부의 총선에 도움이 되는지, 얼마나 큰 경제 협력을 얻어낼 수 있을 지를 면밀히 계산해 움직일것이다. 큰 이익이 없다면, 2022년 남한 대선 때까지 김정은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 요즘 일본의 강경한 태도는 북한 경제 개발 기회를 놓치는 ‘저팬 패싱(Japan Passing)을 우려하는 데서 나온 것은 아닌가.

"글쎄. 1970년대 북한과 교역한 일본 기업, 일본인 대부분 무역 대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런 기억 때문에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경제 교역에 나서고자 하는 일본 기업이나 일본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북한은 남한과 같은 민족이며 남한의 성장을 볼 때, 북한의 성장 잠재력도 크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런 잠재력보다도 부정적인 옛 기억이 일본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다만, 향후 미국이 북한과 수교할 경우 일본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일본은 큰 규모의 국가 중 미국과 더불어 북한에 적대 관계였 던 몇 안 되는 나라인 데다 미·일 관계를 매우 민감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 한·일의 젊은 세대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냉정한 자세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웃 일본은, 또 한국은 서로 필요한 상대인가. 필요하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두 나라 젊은 세대들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1/2019090100586.html



[·일 해법을 찾는다]박성수 LA 상공회의소

"에선 배타주의자로 낙인 찍혀선 안돼...5만명 서명으로 의회 설득"

             
입력 2019.08.25 13:10 | 수정 2019.08.25 14:22

"미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자칫 남을 배척하는 그룹, 배타주의적 민족으로 오인돼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대신, 5만명 이상의 서명을 모아 시·주·연방 의원에게 보내자는 게 한인 단체들의 전반적인 생각입니다. 한·일 갈등의 심각성을 알리고 중재를 촉구하자는 것이지요."

 박성수 로스앤젤레스(LA) 상공회의소 회장/LA 상공회의소
박성수 로스앤젤레스(LA) 상공회의소 회장/LA 상공회의소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와 한국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선언’으로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해외 교민 사회도 이런 갈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 한인 단체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고 한·일 관계 중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미국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자가 한인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LA) 상공회의소 박성수 회장에게 연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LA 상공회의소는 LA거주 한인 상공인들의 권익 옹호와 이익 창출을 위해 1971년 한인상공인들이 발족한 단체다.

박 회장은 지난 7월 LA 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현재 LA 교민 사회는 한국 정부의 대(對) 일본 강경 대응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인 사회가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데, 미국 사회에서 폐쇄적인 민족, 배타적인 그룹이라는 이미지로 낙인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서강대를 졸업하고 쌍용보험 부장, 동유럽 본부장(폴란드 거주) 생활을 마감하고 1998년 미국에 이민을 왔다. 서강대 남가주 동문회장, LA한인상공회의소 대회협력 위원장, 수석 부회장 등을 거쳐 LA 한인 상공회의소 회장, 한인 상공회의소 미주 총연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보험 중개회사 허브 인터내셔널(HUB International)의 수석 부사장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전화와 이메일로 이뤄졌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 미국 교민 사회는 한·일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공에 대한 배상 판결이 이번 갈등의 시발이었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갈등을 키웠다고 한인 사회는 보고 있다. 아베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아베의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한인 사회에서는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21년 전 내가 막 미국에 이민 왔을 때 대형 매장 전자제품 코너 대부분을 소니, 파나소닉 등 일제가 차지했다. 15년 전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의 삼성과 LG가 치고 올라와 일본 제품의 점유율을 넘어섰다."

― 최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강경 대응은 필요하다. ‘한국인은 냄비 근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아베의 정책 전환을 이끌어 내도록 꾸준히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미국 내에서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인에 대해 배타적 민족주의 이미지를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왜 그런가.

"물론 미국에서도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을 한다면, 조국애를 발휘하고 한민족을 단합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다.

미국 법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차별(discrimination)이다. 불매 운동은 차별적인 구매 행동이며 이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매우 어렵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 한인 사회가 배타주의 그룹 혹은 배타주의 민족으로 오도될 경우, 오히려 우리의 의견이나 생각을 정책에 반영할 기회를 잃게 된다.

LA만 해도 다문화 사회이며 한인 사회는 일본계 미국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산 제품 구매 장려 운동과 같은 촉진 운동은 할 수 있어도 불매 운동은 조심스럽다."

― 최근 LA의 코리아타운에서는 ‘한일 갈등’을 주제로 한 광복절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8월 13일 LA JJ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광복 74주년 기념 토론회의 주제가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였다. 이 토론회에서도 반일(反日) 감정이 고조된 한국 사회와 달리 다민족, 다문화가 공존하는 미국 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한인 사회의 역할을 찾아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토론 패널로 참가, 무역·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한인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로 국제 경제 질서를 깨뜨린 아베의 정책에 정치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한인 사회의 성명을 모아 시주연방 의원에 전달하자고 주장했다."

― 대체로 어떤 논리의 의견서인가.

"국제 시장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본의 행태를 바로잡도록 미국 의회에 압력을 넣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부가 외교적 강온 정책은 적절히 구사하되, 일본에 대해 수출 규제로 맞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된다. 일본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의원들에게 청원서를 보내는 것이 왜 효과적인가.

"미국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다. 시민의 의견을 존중한다. 성명서 등 서명이 담긴 의견서를 모아 시, 주,연방의원들에게 전달하면, 그 의견이 정책 방향에 적용되거나 법제화하는 데 큰 참고가 된다.

현재 한인상공회의소와 한인회 등 수십 개의 한인 사회 단체들이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적어도 5만명 이상 서명을 모으자는 게 단체들의 생각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은 수백 표, 수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많은 수의 서명이 담긴 의견서가 도착하면 표를 의식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미국 정치인을 설득하면 미국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밖에 주류 언론인을 초청하는 세미나와 토론회 개최 등도 양국의 갈등을 알리고 이를 해소하는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LA 시의원에 한국계가 있나.

"현재 LA 15명의 시의원 중 2명이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이다. 한인 사회에서 친한파 정치인을 만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각 단체들이 정치인에 대한 자금 후원에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미국 한인 사회에서 한국의 외교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나.

"많았다. LA한인회는 경상북도 독도재단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주류 사회 내 한인들의 위상 증진과 독도 홍보 강화를 위해 독도 홍보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8월 5일 21개 한인단체장들이 모여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를 규탄하는 성명서 초안을 들고 한인들의 많은 참여를 당부하고 있다./LA 상공회의소
8월 5일 21개 한인단체장들이 모여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를 규탄하는 성명서 초안을 들고 한인들의 많은 참여를 당부하고 있다./LA 상공회의소
―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미국 사회의 분위기는.

"대통령 당선 초기와 비교하면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보다 긍정적인 시각이 늘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점차 지지를 얻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민주당이 강한 편이다. 이 지역에서는 트럼프 지지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트럼프가 가져온 변화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미국 우선주의는 과거와 같은 거의 무조건적인 도움은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될 것이다.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사전에 잘 따져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미중 무역 전쟁이 전 세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미국이 중국을 길들이기를 시작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다만,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무역 전쟁이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냐는 부분에는 이견이 있다. 중국산 제품의 관세 인상으로 제품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기는 어떤가.

"미국 전반적인 경기는 좋은 편이다. 주류 사회가 좋다. LA 경기도 꽤 괜찮다. 다만, LA 한인 사회의 경기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의류 생산기지였던 LA 다운타운의 대형 의류 시장인 자버(Jobber·Fashion district)이 온라인 쇼핑몰 활성화로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류 제작에 드는 인건비 등 경비도 크게 올랐다. 자버 상인의 다수가 한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형편이 좋지 않으면, LA 한인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 LA한인상공회의소 차원에서는 LA 한인 경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미주 한인 경제인들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시 및 주 정부와의 관계 향상, 세미나 및 전시회 주관, 우수 기업인 선정 시상 등의 장려책을 펼치고 있다. 내가 43대 LA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인데, 43대는 지난해에 이어 북한에 경제협력단 파견을 추진하고 있다. 미주 경제인들은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 질 높은 노동력에 관심이 많고 투자할 의시가 있다. 자바 시장의 침체를 겪고 있는 LA 경제인들의 관심은 더 크다. 트럼프 정부 이후 대북 제재가 강화돼 미국인은 북한을 방문할 수 없다.하지만, 외교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LA한인상공회의소는 지난 1980년 북한의 평양에 공식적으로 다녀 온 적이 있다."

― 미국은 과연 어떤 사회인가. 20년 넘는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 달라.

"우선, 미국은 완전 경쟁 사회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경쟁 사회이기에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늘 변화해야 한다.

또한 참으로 다양한 사회다. 한인 사회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또다른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도 다양성이 미국 사회의 근간이며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살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가 좀더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모든 것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것이 있지, 틀린 것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미국 사회에 K팝 등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과 더불어 동포의 미국 정계 진출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미주 한인들의 성장과 성공은 국제 정치와 국제 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5/2019082500443.html


[·일 해법을 찾는다]민동준 부총장

, 싸움 안끝낸다...중국도 공격해 올 것


 

입력 2019.08.18 13:10

"이게 끝이 아닐 겁니다. 중국도 100% 공격해 올 것입니다."

광복절 다음 날인 16일 국내 손꼽히는 재료 전문가 민동준 연세대 행정·대외 부총장(신소재공학부 교수)을 찾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 수위를 낮추고 외교적 해결을 제안했다.

하지만, 민 부총장은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이라고 운을 떼면서 "제가 2년, 3년 뒤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을까 두렵다"고 했다.

민동준 연세대 행정·대외 부총장(신소재공학부 교수)이 16일 서울 연세대학교 공학관 연구실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강호 기자
민동준 연세대 행정·대외 부총장(신소재공학부 교수)
16일 서울 연세대학교 공학관 연구실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강호 기자
강제징용공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은 잠시 봉합될 수 있지만,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난 일본은 계속해서 한국에 타격을 주는 품목을 늘릴 수 있다는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레턴우즈 체제와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무역체제를 깨려고 하고 있습니다. 2000년 완성된 동북아 분업 체계도 크게 흔들리고 있어요. 이제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가는 겁니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됐나요?"

그는 인터뷰를 위해 ‘4차 산업혁명과 소재산업 육성전략’(2017년 국회토론회 자료)와 ‘희유금속 산업 활성화 방안’(2008년 동향 보고서 자료)’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 자료들 보세요. 그동안 소재·부품 산업 육성에 관한 정부, 국회 차원의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예요. 20년 전부터 논의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어요. 이 고비를 넘기면 소재·부품 산업 육성에 대한 관심이 또 썰물처럼 빠져 나갈까 두렵습니다."

민 부총장은 도쿄대에서 금속공학 박사를 취득하고 연세대 금속공학과 교수, 공대 학장 및 대학원장, 포스코 석좌교수, 도쿄대 초청 특임교수, 대한금속재료학회 학회장을 맡았다. 일본철강협회 니시야마상, 포스코 학술상, 동탑산업훈장을 연이어 받았다. 연세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장비 60여개에 대한 국내 기업의 기술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민 부총장은 185명 교수가 참가하는 기술지원연구단에 재료 전문가로 참가한다.

다음은 민 부총장과의 일문일답.

―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를 통해 대일 비난 수위를 낮추고 협력을 제안했다.

"나는 이번 갈등의 봉합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재·부품의 일본, 중간재의 한국, 조립의 중국으로 이어지는 20년 이상 지속된 동북아 분업 체계를 흔들겠다는 일본의 의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트럼프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다자무역체제에 강한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이 체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이 한국과 일본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 제 갈길을 가는 새 체제에 적응해야 한다."

― 한국이 일본 소재·부품에 의존적인 이유는.

"한국은 좋든 싫든 일제 36년의 산업적 유산에 영향을 받았다.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자가 일본 기술자의 영향을 받아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것에서 보듯 한국 기업의 주요 거래선도 자연스럽게 일본이었다. 동북아 분업체계는 인간 관계를 기초로 해 만들어졌다. 한국은 철강, 시멘트 등의 소재를 자체 개발하는 성과도 거뒀지만, 전자 소재·부품에선 높은 진입 장벽 때문에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 일본은 왜 한국을 흔들려고 하나.

"한국은 인력 양성과 자본의 축적을 이룬 80년대부터 전자, 조선, 자동차 산업을 본격적으로 일으켰다. 일본은 한국 기업이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그건 일본의 오판이었다. 한국 기업의 성장이 확실히 감지되고 난 후에도 일본은 손을 쓰지 못했다. ‘잃어버린 20년’ 때문이었다. 일본 스스로 먹고살기 바빴던 탓에 한국 기업들이 요청하는 부품과 소재를 파는 데 급급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일본 전체 총생산(GDP)에서 내수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어섰다. 가장 큰 어려움이었던 고용 문제가 풀렸다. 베이비부머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젊은이들이 메꾸며 일본은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가 됐다. 한마디로 지금의 일본은 대외 무역 구조를 바꿀 여력이 생겼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철강부터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주력 사업을 너무 쉽게 한국에 넘겨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일본은 미래 산업과 미래 시장을 지키기 위해 보다 전략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술과 제품, 그리고 동남아 시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은 소재·부품 분야에서는 앞서지만, 텔레비전, 스마트폰 등 완성품에서는 명함을 못내밀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시장을 꽉 잡고 있고 중국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에서 치고 나갔다. 일본이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고 하기 어렵다. 앞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은 매우 커질 것이다. 일본은 이 시장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일본은 이 시장을 한국과 중국에 넘겨주는 우를 범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소재 국산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소재 개발의 특성은 무엇인가.

"소재 산업에선 ‘혁명(불연속적인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불가능하다. 오직 경험을 통해 조금씩 진화한다.
가령, 일본 도래이는 산업용 섬유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양모, 비단, 레이온, 나일론 등을 거쳐 탄소 섬유까지 개발하는 데 이르렀다.

탄소 섬유 자체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소위 빗질이라고 하는 데, 꼬인 섬유를 제대로 펴는 게 매우 어렵다. 도래이는 엉키고 엉킨 양모를 풀어본 오랜 경험에서부터 체득하고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소재를 만들고, 가공하고, 가격경쟁력 있는 양산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소재 사용 시 주의해야 할 점을 나열한 방대한 매뉴얼도 엄청난 노하우의 산물이다. 제대로 된 매뉴얼을 구매처에 주지 않으면 불의의 사고 때 큰 소송에 직면한다."

― 일본은 왜 소재·부품에강한가.

"일본의 소재 산업은 한 지역의 역사적 특성과 장인 정신(모노즈쿠리·もの造り)에 기반한 일종의 ‘문화’라고 보면 된다. 일본 니가타 현에 위치한 스와다(SUWADA)는 전통적으로 열 처리를 아주 잘 한다. 스와다가 만드는 손톱깎이는 섬세한 절삭력으로 개당 수십만원에 팔려간다. 이 기술은 훗날 수술용 마이크로나이프 제조로 이어졌다. 올림푸스의 내시경에 쓰이는 아주 작은 수술 칼날은 바로 스와다가 만든 것이다."

민동준 부총장은 16일 2008년 작성된 소재동향 보고서 자료를 보여줬다. 그는 “20년 전에도 소재부품 육성에 관한 토론과 논의가 있었다”면서 “중요한 것은 깊이있는 계획과 실행”이라고 말했다.
민동준 부총장은 162008년 작성된 소재동향 보고서 자료를 보여줬다.
그는 20년 전에도 소재부품 육성에 관한 토론과 논의가 있었다면서
중요한 것은 깊이있는 계획과 실행이라고 말했다.


― 우리 정부가 연간 1조원씩 소재·부품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강남 아파트 재건축 규모가 1조원이다. 어떻게 보면, 1조원이 큰 돈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실행이다. 여기에 2개의 자료가 있다. 2년 전 국회 토론회 자료이고, 10년 전 소재 동향 자료다. 최근 정부가 떠들썩하게 발표한 정책과 2001년 ‘소재·부품 특별법’을 만든 후 지난 20년 동안 정부가 발표한 정책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일본 제품의 불매 운동 등은 일종의 ‘굿판’이다. 굿이 끝난 후 우리가 무엇을 치밀하게 실행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 기업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우선 기업들은 일본 소재·부품의 중독성에서 끊고 새 레버리지(지렛대)를 만드는 고통의 적응 시간을 보내야 한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연구개발과 제품 상용화 사이에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높은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동감한다. 저 같은 선생들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뭐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산 체제를 갖추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3년 이상의 고통에 직면해야 한다. 동진세미캠 같은 국내 기업은 사활을 걸고 소재·부품을 개발하고 이를 양산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또 삼성전자는 당장 불량률이 치솟더라도 국산 제품을 테스트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일본 불산을 한국 불산으로 바꾸면 되지 않냐고 쉽게 말하는 데, 소재를 바꾸면 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기계를 조정해야 한다. 이때 깨지는 돈이 엄청나다."

―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술 생태계가 중요하겠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된다’는 평범한 투자 원칙 아닌가. 일본 또는 중국의 견제구에 또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상당한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싸움은 삼성 혼자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독보적인 제품 설계 능력을 뒷받침하는 소재·부품 업체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을 때, 즉 기술적 생태계가 있을 때 이길 수 있다.

만얀 우리 대기업이 전체 필요량의 10~20%만 국산 제품을 써도 일본 소재·부품의 납품 단가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오늘의 문제만 대응해서는 안된다. 내일의 문제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싸움은 국가 대 국가 간 싸움이다. 순양함 한 대만으로 부족하다. 함대가 필요하다.

미래 싸움의 핵심은 ‘희토류’다. 2010년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인 선장이 일본 해경에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중국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지연시켰다. 중국은 희토류 통제로 소재·부품 강국인 일본의 목줄을 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선을 호주 등으로 다변화하고 희토류를 적게 쓰는 자석(모터의 핵심 재료)을 개발하거나 자석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중국이 한국에 아직 희토류 카드를 쓰지 않았는데, 나는 곧 쓸 것이라고 본다. 우리 정부는 희토류 비축에 나서야 한다. 4차 산업 혁명에 필요한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중에서 희토류 없이 되는 게 있나. 양파와 쌀은 수매하고, 남아도는 알루미늄은 사들이는데, 방위산업에 필요한 텅스텐과 같은 전략 금속은 얼마나 비축하는지 모르겠다.

한국화학연구원, 기계연구원은 있는 데 소재연구원은 없다. 소재연구소를 연구원으로 확대개편해도 좋고, 국가 소재 전략을 심층 연구할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소재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근거로 희토류 무기화에 대비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정책의 가장 큰 임무다. 그렇지 않으면, 100년 뒤에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 소재·부품업계는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나.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말한다. 가령, 불산은 저장이 불가능한 소재다. 갑자기 주문량이 몰리면 밤샘을 해서라도 공급하고 그때 돈을 벌어야 한다. 1년 12달 소재 주문량이 꾸준하지도 않을 뿐더러 내년에는 다른 소재가 뜨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주 52시간에 맞춰 정규직 인력을 확보해두기 어렵다. 나는 주 52시간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술 변화에 따라 인력 수급과 근무 시간을 아주 유연하게 처리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

― 대학생들은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보나.

"올해 2000년생들이 입학했다. 이들의 부모는 1998년 국가금융위기(IMF)한 가운데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쳤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요즘 대학생들의 화두는 ‘생존’이다. 그들이 ‘공정’에 매달리는 이유도 생존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명료하지 않은 미래에 크게 불안해 하고 있다.

한국의 베이버 부머들은 올해부터 시작해 2030년이면 모두 은퇴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조만간 취업 시장의 숨통이 확 트일 것이다. 하지만, 베이어 부머 세대의 절반 수준인 인구로는 현재 대한민국 총생산(GDP)을 유지할 수 없다. 1인당 생산성이 2배는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주는 대학 교육의 혁신이 시급하다. 대학이 미래에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모든 분야의 연구개발 기간이 짧아질 것이다. 이 주기를 우리 젊은 세대들이 못따라간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고 할 것 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줄 서기와 같은 작은 일에 공정한 규칙(rule)을 지키는 데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앞으로 완전히 달라질 새 사회의 공정한 규칙을 만드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조직을 유지하고 소통했던 방식이 모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한국 사회의 규칙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고 젊은이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8/2019081800498.html


[·일 해법을 찾는다]이종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방치에 중국만 어부지리"


             
입력 2019.08.11 07:00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한국에선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일고 있다. ‘강(強) 대 강’으로 맞붙은 한·일 갈등이 경제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디지털 편집국은 한·일 경제에 정통한 인사를 중심으로 갈등 상황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 인터뷰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 주]

"중국을 시장경제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한·일은 협력해야 한다는 게 지난 50년간 두 나라 경제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한·일 두 나라의 교역 조건은 악화하는 반면, 중국은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종윤 전 한일경제협회 상근부회장/류현정 기자
이종윤 전 한일경제협회 상근부회장/류현정 기자
최근 만난 이종윤 전 한일경제협회 상근부회장(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은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으로 경쟁이 심화하고 제조 과정의 비효율이 늘어나면, 결국 두 나라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수출 단가와 이윤이 모두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 일본 히토쓰바시대에서 석사, 박사를 취득한 후 한국외국어대 국제 통상학과 교수(1984~2010년)를 지냈다. 한일경상학회 회장,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등을 두루 맡은 일본 경제통이다. 2011년 한일경제협회 상근 부회장,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를 맡으면서 양국 경제인 교류의 실무 최고 책임자로 뛰었다.

이 전 부회장은 2014년 출간한 저서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한국과 일본이 중심이 되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유럽연합(EU) 같은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금융 위기나 경기 불황에 대비하자"고 주장했다. 2019년 두 나라 관계는 그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방관자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다음은 이 전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 한국 경제가 일본에 의존적인 이유는.

"한국은 1965년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한 이후에 대외지향적인 경제 성장 정책을 펼쳐 왔다. 한국이 60년대 경공업, 70년대 중화학 공업을 급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과 가까운 곳인 일본에서 기자재와 원자재를 빠르게 조달했기 때문이다. 사후관리(AS)도 편했다. 덕분에 한국은 높은 경제 성장률과 빠른 산업 고도화를 이룰 수 있었지만, 일본 원자재와 기자재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갖게 됐다. 양국의 경제 관계는 비교적 ‘윈-윈(win-win)’하는 구조였다. 1980년 대 이후엔 한국 기업이 성장하면서 제3국에서 한·일 기업 간 과열 경쟁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빼 B그룹으로 분류한 이후 한국 내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일본 재계는 처음엔 자국 정부의 조치가 삼성 등 한국 기업을 견제하는 일종의 기회가 될 것으로 봤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줄고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정부 조치에 대해 불만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역사 문제를 통상으로 보복하는 것은 WTO 체제에 맞지 않는다. 일본이 자유무역 질서를 스스로 파괴한 것은 앞으로도 일본이 대외 활동을 하는 데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이 WTO에 제소하면 재판에서 일본을 이길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WTO 판결이 나오는 데 2~3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한국의 주요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대응도 필요하다고 본다."

― 미국이 중재하는 방안은?

"그동안 미국은 한·일 간 갈등을 해소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양국 사이가 틀어졌고 그때도 한·일이 화해하도록 미국이 강하게 압박했다. 지금은 트럼프가 이 상황을 묵시적으로 승인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할 정도로 미국이 방관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스스로가 강력한 보호 무역 정책을 펼쳤다. 그랬던 미국이 일본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일 갈등이 커져 한국 반도체 산업이 휘청거리면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도 배치된다. 한국이 중재를 요청했는데도 미국이 한·일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충북 진천 각계 대표 33명이 10일 이상설 선생의 생가에서 일본 경제 보복 조치 중단을 요구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충북 진천 각계 대표 33명이 10이상설 선생의 생가에서
일본 경제 보복 조치 중단을 요구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한국과 일본이 ‘강대강(强對强)’으로 맞붙고 있다.

"한국이 부품·소재의 국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제3의 대체 수입국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나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모든 원자재, 기자재를 국산화하자는 전략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국산화를 하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하면 제품의 원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이는 제품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한·일 경제의 분업 구조가 망가지면, 양국의 교역 조건이 악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양국이 강대강으로 맞불어 사실상 별개의 경제권을 만들면, 제품마다 해외에서 과당 경쟁을 벌여야 한다. 수출 제품의 단가가 내려가고 기업의 이윤폭이 줄어든다면 양국 기업에 모두 손해고 중국 등 다른 국가에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전체 공급망에서 협력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자동차에 일본산 부품이 많이 들어가고 일본 도요타 자동차에 한국산 부품도 꽤 들어간다. 양국의 경제 구조는 서로의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형태로 얽혀 있는 게 좋다."

― 한·일 관계는 꾸준히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에 나선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에 대한 보상 책임도 마무리됐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등 총 6억 달러를 한국에 제공했다. 이는 당시 일본 경상 수지의 40%에 달하는 금액으로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한국은 이 자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뤘다.

일본에 대해 도덕적으로 사과를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금전적으로는 더이상 요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개인에 대한 금전적 보상 문제는 가능한 우리(한국)가 해결하자는 뜻이다. 양국의 경제 협력이나 안보 협력에 차질이 생기면 서로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그동안 한·일 양국 기업인들은 50년 넘게 교류하면서 중국을 자유무역 통상질서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라도 서로 협력하자고 말해 왔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일본은 남중국해 분쟁으로 각각 중국과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국교 정상화 이후 최대 갈등을 겪고 있으니 안타깝다."

― 양국 정부 입장에서는 타협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갈등을 해결할 묘수가 있나.

"‘강대강'을 선언한 정부가 나서서 타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일 민간 기업들이 소위원회를 구성해 갈등을 극복하는 방안을 만들어 양국 정부에 건의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한국엔 한일 경제협력위원회가 있고 일본엔 일한 경제협력위원회가 있다. 민간 채널은 많다.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록 두 나라에는 득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이 EU를 만든 것처럼 인접 국가끼리는 협력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 국가로 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면, 한국과의 갈등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지 않을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국과의 갈등,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등을 평화헌법 개정의 명분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과의 무역 갈등이 득이 될 게 없다. 일본도 교역을 통해 성장한 나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1/2019081100078.html



[·일 해법을 찾는다]안경수 전 후지쯔 집행역

"한일갈등 물밑엔 일본인의 박탈감 있다"


             
입력 2019.08.04 06:01 | 수정 2019.08.04 09:18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한국에선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일고 있다. ‘강(強) 대 강’으로 맞붙은 한·일 갈등이 경제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디지털 편집국은 한·일 경제에 정통한 인사를 중심으로 갈등 상황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 인터뷰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 주]

"허, 참, 이게 하루아침에 해결책이 ‘뚝딱’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원인이 쌓여 온 만큼 오랜 세월이 걸려 해결될 것입니다. "

안경수 전 후지쯔 경영집행역(현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박상훈 기자
안경수 전 후지쯔 경영집행역(현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박상훈 기자
7월 30일 만난 안경수 전 후지쯔 경영집행역(현 네오랩컨버전스 회장)은 갈수록 첨예해지는 한·일 갈등의 출구는 어디 있냐고 묻는 기자에게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안 회장은 일본 최고의 컴퓨터 회사 후지쯔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며 6년 동안 본사 중역까지 맡았다. 그는 후지쯔 70년 역사상 본사 임원에 오른 첫 외국인이었다. 이후 소니 본사 집행역 겸 소니코리아 회장까지 맡았으니, 일본 비즈니스맨의 혼네(本心·본심)를 그만큼 잘 읽는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대우, 삼성, 효성 등 국내 대기업의 30대 임원으로 뛰었고, 지금은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직원 100명 규모의 IT기업 네오랩컨버전스의 회장으로 젊은이들과 부대끼고 있다.

그는 "일본 톱 5 회사에서 날마다 매출을 챙겼던 중역의 촉과 경험으로 이야기한다"고 했다.

"저는 일본 아베 총리의 정치적 속셈만으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단세포적으로 문제를 진단하는 거예요. 갈등의 물밑에는 일본인의 박탈감이 있어요. 바로 ‘잃어버린 20년’이죠. 한국이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줬고 혜택도 얻었어요.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 장기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호의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가 갈등을 표면화시켰지만, 정치적 타협만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감정과 분노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도 냉정하게 진단해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소·중견 기업이 많이 탄생해야 이 파국(破局)을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직마저도 귀하고 천함을 가르는 한국 문화에서 부품·소재 글로벌 챔피언이 나올 수 있을까요?"

다음은 안 회장과의 일문일답.

― 우리나라에 도입된 컴퓨터 1호는 후지쯔 ‘파콤 222’였다. 한국에선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후지쯔로 1996년 자리를 옮겼을 때 당시 87년생 아들이 일본 기업으로 갔다며 굉장히 싫어했다. 내가 ‘한국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배우고 이용하는 것’이라고 아들을 달랬다. 스스로도 한국 기업과 부딪히는 사업을 맡지 않는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근대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만약 일제 36년이 아주 오래 전, 가령 원나라의 고려 침공 이전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한국인의 반일(反日) 감정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이번 갈등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보는 이유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승승장구하던 일본 전자산업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 탓도 있다. 원래 가전 부문에선 RCA, 제니스, GE 같은 미국 기업들이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가 파나소닉, 도시바, 샤프 같은 일본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은 삼성, LG가 수위를 달린다. 누구도 제 것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데 박수만 보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은 이 빼앗긴 먹거리의 보충재를 찾지 못했다. 이건 아주 단순한 플러스, 마이너스 게임이다. 더하는 건 없는 데 빼앗기는 것만 있다면? 되찾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우연한 기회에 일본으로서는 그 기회를 발견한 거다."

― 일본은 왜 다음 먹거리를 찾지 못했나.

"일본은 70-80년대에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미국과 독일 등을 따라잡았다. 자신감이 붙은 일본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창의적 선도자)’ 전략을 가동했다. 일본은 미국 기업과 부동산을 사들였다.

일본도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한테 혼나며 공부하고, 도쿄대를 나와야 도쿄대의 교수가 되는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혁신과 창의를 꽃피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의 퍼스트 무버 전략은 통하지 않았고 후발 도전자에게 있던 것마저 빼앗기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다. 우리도 새 활로는 개척하지 못한 채 중국한테 따라 잡힐 수 있다. 잘 하는 것을 우선 잘 지켜야 한다."

― 일본의 대표 기업인 소니는 최근 부활하지 않았나.

"나는 소니가 부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자 폭을 조금 줄이고 이익 폭을 늘었다고 부활한 게 아니다. 오랫동안 조직 생활을 해보니, 조직은 역시 ‘혼(魂)’이 있어야 한다. 혼은 ‘폼 나는 비전’ 그 이상이다. 조직원들이 열정을 쏟아붓게 만드는 힘이다.

소니에는 아직 혼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경쟁력이 보이지 않는다. 소니는 영국계 미국인인 하워드 스트링거, 미국 유학파 출신인 히라이 가즈오를 잇따라 CEO로 발탁하면서 미국 기업도 아니고 일본 기업도 아닌 기업이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소니의 혼을 부활시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이 지난 2일 오전 각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이 지난 2일 오전 각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한국은 교역 중심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중국엔 물건을 수출하고 일본으로부터는 물건을 수입해야 하는데, 중국과 일본이 각각 사드와 대법원 판결로 한국을 흔들고 있다.

"한·일 갈등 해법? 오늘 당장 해법을 내놓는 것은 무리다. 단기간에 생긴 갈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방 풀릴 문제도 아니고 완전히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지고 가야 할 업보(業報)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100년 넘게 갈등하고 있지 않나.

오랜 세월을 갖고 풀어야 할 문제라면, 불매 운동이나 죽창가 등 감정으로 대응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현이 좀 어색하기는 한데, 어떻게 하면 잘 싸우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 정부가 핵심 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에 매년 1조원 이상 지원하기로 하는 등 이 분야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역대 정부에서 계속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제대로 성과를 낸 적은 없다.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게 아니었고 물고기를 아예 갖다 주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사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먹을 것을 갖다 주면, 자식은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 박영선 중소벤처부 장관이 ‘중소기업이 불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지만, 대기업이 이를 구매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삼성, LG에 납품한다’는 폐쇄적이고 종속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전 세계 누구한테라도 팔 생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 한국에서 부품·소재 분야 세계 챔피언이 나오게 하려면?

"한국의 뿌리 깊은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가 문제다. 도처에 자리잡은 ‘교수 만능주의’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선거 캠프에 교수 500명씩 줄을 서고 실제 국정 리더로 교수를 발탁한다. 교수는 주로 혼자서 일하고 학생들이 자신을 무조건 따르는 분위기에서 살아온 사람 아닌가. 그들은 팀으로 생존한다는 게 뭔지 모른다. 현장을 모르는 리더가 나라를 망친다.

사농공상 문화가 기술직에도 계급을 만든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트랜스미션을 만드는 기술자보다 반도체 설계 기술자가 더 훌륭한 것처럼 대우한다. 타이어 만드는 사람보다 엔진 설계하는 사람을 더 쳐준다. 심지어 오너 2세도 선대(先代)가 기름밥을 먹으며 일구어 놓은 가업을 두고 폼이 안난다며 벤처 투자에 기웃거린다.

관계에도 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술에도 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일부 기술 분야를 제외하고 고객과 기술의 축적이 잘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제에 우리 사회 풍토를 돌아보자. 냉엄하게 자문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품·소재 글로벌 챔피언이 나올까."

―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은 뭔가.

"한국 기업의 장점은 집행력(실천력)이다. 특히 삼성이 보여준 경영력은 완벽에 가깝다. 한국은 인사, 영업, 기술 등을 두루 돌게 하고 인재를 최고의 경영자로 키운다. 일본에서는 기술자는 평생 기술자로, 영업자는 평생 영업자로 자란다. 한 부문만을 알고 최고경영자에 오르기에 한국기업에 비해 경영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일본에선 산의 기슭 역할을 맡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하게 일하며 세계 최고가 된다. 후지산은 아래가 넓다. 그게 일본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위에 오르려고 한다. 폭이 좁고 뾰족한 63빌딩을 닮았다. 이게 사농공상 문화와 관계 있다. 부품·소재 육성이 구호로만 되는 게 아니다.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 장기적으로 문제를 풀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해야 할 일은 있을 것이다.

"현실을 아프도록 냉정하게 보자. 엉터리 통계는 그만 인용하자. 내가 한국IT 산업의 매출은 절반으로 깎아서 보는 게 정확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후지쯔가 삼성전자에 100억원어치 대형 컴퓨터를 바로 납품할 수 있었다면, 총매출은 100억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IT 자회사를 만들어 이를 통해 납품하게 한다. 즉, 후지쯔 에서 삼성SDS(매출 100억원), 삼성SDS에서 삼성전자(매출 110억원)으로 총 210억원의 매출이 잡히는 식이다.

지금도 한국 경제 통계 중 이와같은 착시 효과가 수없이 많다. 누가 한국을 부품 수출 강국이라고 하던데 헛웃음이 나왔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해 해외 자사 공장에 공급하는 일종의 자전 거래까지 부품 수출 통계에 잡히는 데, 이 행간을 읽지 않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운영했던 나라다. ‘일부의 희생으로 상대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애국하는 길’이라는 전 근대적 가치가 일본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우리 산업이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냉정하게 현실을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4/2019080400042.html